유년시절 내 고향과 가족을 찾아서
2022년 8월 28일 ~ 9월 27일 모하비 일정
8월 24일 ~9월 10일간 상전님 일정
로스앤젤레스 - 서울 - 대구 - 하양
상전님과 함께 한국 여행기
인천으로 떠나는 아시아나 비행기
탑승 대기 중 밖을 본
로스앤젤레스 (LAX) 공항 모습
태평양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맞바람을 받고 비행하는
한국행은 총 13 시간 걸리고
엘에이행 비행은 바람이 밀어주어
짧게 걸려 총 11시간 20분으로
한국행 비행이 훨씬 피곤하지만 시간은 흘러
한국땅에 도착했습니다.
큰 조카 사위의 자동차를 타고
변모한 한국의 모습을 보며 달립니다.
큰 조카사위의 금일봉, 교통카드, 손선풍기,
마스크 한 통 당장 필요한 선물을 챙겨
그리웠던 고국의 정이 한 번에 느껴집니다.
잘 정비된 한국 도로의 달라진
모습에 마음은 즐겁지만 몸은 천근만근
피곤이 밀려옵니다.
때가 지났지만 모두 저녁을 안 먹고
기다린 식구들과 가장 먹고 싶었던 회가
나오고 상차림이 시작됩니다.
피곤과 목 통증으로 싱싱한 회의
맛이 깔깔했고 8년 만의 가족 재회의
포옹을 피하니 식구들은 살짝 서운해합니다.
비행 중의 쇠한 목 통증은
한국에서 첫밤을 보낸 이른 아침
자가 진단을 하자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창살 없는 일주일 격리를 하게 됩니다.
일정이 취소되자 상전님 친구의
위로 과일이 왔습니다.
맛있다고 했더니 또 배달된 과일입니다.
상전님의 예약 일정이 연기되고
일 격리하자 2주 여행은 겨우
4일만 남아서 수수료를 물고
미국행 비행을 4일 연장했습니다.
조카의 과일 주스 위문 배달입니다.
큰 조카사위의 저녁이
배달입니다.
한국에 왔지만 엄마와 함께 갇힌
상전님은 행복한 저주라고 절규를 합니다.
여동생에게 집을 송두리째
내 준 큰 오빠의 약이 배달되었습니다.
전화로 창문을 열어 보라고 해서 내려다보니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어 위로합니다.
큰 오빠의 위문품? 족발입니다.
상전님은 국수를 흡입하고
모하비는 강한 음식에 콩나물국과
깻잎에 몇 점 먹고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오빠와 올케는 작은 딸 집으로 피신하고
주인을 내 쫓고 객이 점령한 셈입니다.
약도 열심히 먹지만 황금 같은 여행
일정의 일주일은 멀기만 합니다.
큰 오빠 책상 유리 밑에 전시된 사진
왼쪽 위부터 모하비 중학시절 당시에
큰 오빠의 예비 색시에게 보여줄
가족사진이고 그다음이
두 번째 외손주입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오빠도
할아버지가 되니 손주만 보면 입가에
꿀이 떨어집니다.
귀가 어두워져 더 말이 없어진 70세의 오빠,
오빠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나 싶습니다.
아래 왼쪽부터 오빠의 평생을 보낸 해군무원 시절
청렴결백을 일관하며 일했습니다.
모하비 2살쯤의 기저귀 시절 가족사진입니다.
큰 오빠 청년기 해군시절은 거의
군함에서 생활이 더 많았고
배 모형과 거북선을 그 시절 손수 조각해서
이 작품들은 오빠의 젊음이자 상징입니다.
백령도 섬에서 모하비에게 보내 준 편지는
모하비 유년시절에 섬이라는 미지의
세상을 꿈꾸게 해 주었습니다.
집안에 태극기를 달 정도이니 나라 사랑도
가족 사랑 이상으로 강한 오빠 집에
갇혀서 TV의 액자 같은 명화 감상을 하며
느리게만 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전님과 모하비는 후속 코로나 증상으로
기침과 목소리 변성만 있고 입맛이 좋아
밥도 잘 먹고 특히 잠자는 마법에 걸렸습니다.
저녁 먹고 초저녁 7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올케의 냉장고를
파먹고 또 아침 8시에 잡니다.
낮잠은 기본입니다.
냉동고에는 대구 사는 언니가 보내준
다슬기 국을 먹자 상전님은 외할머니 냄새라고
하고 사골국은 시골의 외갓집 맛이랍니다.
격리 해제 하루 전 일요일인
9월 5일은 비가 오는데도 분리수거로
아파트 아래는 분주합니다.
상전님은 이 쓰레기 분리가 미국에서의
막살이?로 몹시 불편해하였습니다.
음식물 쓰레기의 실명제, 종량제를 위한
기계 사용법을 보고 지구 보호에 앞장서는
한국 정책은미국이 감히
염두를 못 내니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을 느꼈습니다.
코비드 해제 하루 전에는 태풍 힌남노로
거실에서 보이는 산도 비에 젖습니다.
오빠는 등산을 좋아하여
서울 제2의 고향 같은 해군본부
인근 동네를 떠나 안양으로 이사했습니다.
한 곳에 매료되면 심한 사랑에 빠지는
김 씨 집안의 내력으로 오빠는 한국의 산천과
없는 산길 안가 본 곳이 없고 장거리 등산으로
지금은 연골 탈퇴로 산행이 거의
불가능해져서 속상했습니다.
8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오빠와 설악산
산행을 3번이나 했는데 이번에는
등산복을 챙겨 갔지만 산행을 못했습니다.
대구행 KTX 예약을 코비드로
날짜를 변경했는데 9월 일 힌남노로
오전 기차가 취소되어 오후에야 광명역에
도착합니다.
역병 와 재해를 한 몸에 안았다고
상전님 투덜거립니다.
광명역 역사 모습을 보니
한국이 정말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임을 실감합니다.
9월 5일 오후는 태풍이 지난 후
화창하여 정겨운 한국의 가을 들녘이
경부선 기차의 차창으로 스칩니다.
상전님 왈, 격리된 일주일은
노 알코올, 노 패스트푸드, 잠만 자고
마치 요양원에서 들어온 듯 하다고 합니다.
대구 동대구역에 도착
태풍으로 대학교 수업도 휴학되어
조카가 픽업 와서 언니 집에 도착하자 매일
진수성찬이 어어집니다.
외할머니 손맛을 닮고 건강식으로
상전님이 가장 입맛이 맞는 음식입니다.
모하비는 만나는 사람마다 뭐 먹고 싶냐고
가장 많이 질문받았습니다.
언니는 묻지도 않고 아침부터
매끼마다 제주산 갈치구이를 차립니다.
미국에서 불편한 점은 갈치가 맛이
없어 아예 먹지 않았습니다.
모하비 아버지가 항상 가시를 발라 주셨고
큰 오빠도 가시를 잘 발라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모하비 스스로 가시를 발라서
조카도 상전님도 주면서 열심히 먹었습니다.
아파트 입구 문은 얼굴인식
집 대문은 지문인식
세계 최고 부자나라 , 미국에서 온
모하비는 한국의 신문화가 신기한
외계인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곧장 모하비가 태어난
고향으로 향합니다.
자동차 전면 유리로 보이는 풍경이
모하비 중학교 시절에는 온통
벼가 심어진 들판이었고 기차가 국도가
유일한 인간의 시설물이었습니다.
모하비 유년시절 늘 보면서 자란
논과 밭인데 왼쪽 아파트 모습이 다른 점입니다.
한없이 평화로운 벼가 있는 들판을 보며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밭을 보면서
모하비는 자랐습니다.
집에서 50 m 거리의
모하비 큰 집은 거대한 사과밭을
일꾼에 의해 운영되었고
모하비 아버지는 켐벨 포도 농장을
스스로 운영하며 일본 제휴 포도 품종개량으로
포도의 일인자 농부라 해도
손색없는 연구하는 농부였습니다.
연로하시면서 힘들어 모하비가 30대
중반쯤에 아버지는 대추로 바꾸었고
지금은 은퇴한 형부가 집에 딸린 500평만
손수 짓는데 형부가
행복해 보여서 기뻤습니다.
시골에 도착하자 태풍으로 떨어진
대추를 줍기로 합니다.
언니의 늦둥이 아들, 모하비 조카와
상전님과 6살 차이로 어릴 때 마냥 챙겨주는
오빠였는데 성인이 되고 근 18년 만에
만났는데 서로 죽이 잘 맞아 좋아 죽습니다.
상전님은 삶의 체험 현장이라며
오빠와 수다를 떨며 대추를 줍습니다.
이번 여행은 상전님의 한국 연민과
모하비 형부의 처제 그리움으로
급하게 방문했는데 우여곡절,
좌충우돌 1주일을 공중으로 날리고
태풍으로 떨어진 대추 줍기로 마음을 달랩니다.
형부는 농업 지소장으로 은퇴 후 작은 텃밭과
대추 일로 대구의 본가는 거의 가지 않고
밥도 못하셨는데 이제
스스로 살림도 잘하십니다.
삼 형제의 막내인 형부는
체재인 모하비 사랑이 유별났기에
출장에서 늘 특이한 과자를 사 오셨습니다.
13살 연상인데 모하비에게 지금까지
존대어를 쓰십니다.
농담으로라도 반말을 하신 적이 없어
모하비 학창 시절 친구들은 어른이
아이에게 존댓말을 쓴다며 의아해하였습답니다.
채반도 박스도 아버지가
손수 쓰신 이니셜이 있습니다.
대추 말리는 일은 3일이 꼬박
기계에서 말려져 우리가 보는 빨갛고 쪼글한
단맛의 대추가 됩니다.
먹거리 많은 한국의 농가
정원의 꽃사과가 외면당하지만
모하비는 사과 중 최고 맛있습니다.
아삭하고 적당히 상콤하고 사과 본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석류도 가을을 재촉합니다.
모하비가 용인의 전원주택 살 때
옮겨온 꽃은 어머니가 감상하셨고
지금은 형부가 즐깁니다.
어머니의 광은
먹거리 보물창고이고
모하비가 타던 자전거도 있습니다.
형부의 소독차
작은 농사에도 자동화 기계가
많이 동원됩니다.
풍성한 가을 오른쪽 풋부사도
태풍에 떨어져 이웃이 분이 주었는데
잼이라도 만들지 바빠서 섞여서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언니는 이 많은 야채들을
서울로 대구 남동생에서 보내는 일도
아낌없이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하니
이제는 우리 집안의 어머니입니다.
대문 들머리에 있는 작은
야채밭은 농약으로부터 자유롭고
겨울 김장 배추와 무가 쑥쑥 자랍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된장 간장
항아리만 언니가 관리하고
어머니의 최애품인 항아리가 즐비했는데
단출해진 모습에서 어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모하비 어머니 관절염으로
고생하자 입식으로 지은 집은
모하비 큰 올케의 아이디어입니다.
올케이지만 모하비에게는 조력자입니다.
언니는 모하비가 대추 줍기 쉬우라고
빗자루로 쓸어 줍니다.
잔소리 대왕 마마인 언니의 근원은
배려와 사랑입니다.
땀 흘린 농부에서 샤워 후에는 도시인으로
변장하여 외식을 나왔습니다.
내 맘대로 간을 하여 먹는
샤부샤부는 언제나 푸짐합니다.
언니가 심은 단감나무도
형부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모하비가 좋아하는
취나물 꽃도 안뜰에서 반겨줍니다.
9월 5일 대구에서 추석 차례를 모시려고
서울 상경 다시 대구 내려간 후
9월 19일 하양 5일 장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이 둑으로 시장이
그 아래로 강이었는데 멋진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형부와 들러 씨앗 구경도 합니다.
형부는 집에서 수확된 씨앗을
모하비가 미국 돌아올 때 많이 주었습니다.
평일 대구로 들어오는 길
버스를 타 봅니다.
시골 구석구석에서 디지털 이정표가
세상을 편하게 해 주는 한국사회의 발전된
모습이 모하비에게는
아직 적응되지 않습니다.
땅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모님 집
내가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
이 땅은 모하비의 쉼터입니다.
이 땅은 부모님 젊은 시절 사랑의 보금자리였고
두 분이 결혼할 때 모하비의 할아버지가
사준 신접살림 집입니다.
모하비 다음 세대인 조카와 내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자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2편 국립묘지 참배가 포스팅됩니다.
* 모하비의 모험에 오신 이웃님, 고맙습니다.
** 머무는 잠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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