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8월 초순 - 미국 도보 여행기 아팔래치안 트레일 ( Welcome Home, Mom )

미국 도보 여행기 14편 -8월 초순

아팔래치안 트레일 ( Welcome Home, Mom )

 

 

 

            * Grafton Notch, AT 북진 3,095.9 km ( 1,923.7 mi) 지점

 

 

* 바위터널, 서브웨이 -메인 주

8-1 수 구름 밤비 146일째 누적 3,095.6 km ( 1,923.6 mi )

아이블로우 트레일 Eyebrow Trail 캠핑장. 

이동 15.4 km ( 9.6 mi )

 

오늘 일정은 어떤 험준한 바위가 있는지 이미 지도를 봤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텐트에 누워 안전산행을 기원했다. 

어제 바위에 긁혀 텐트쌕이 찢어져 이제 텐트를 배낭 안에 넣고 다녀야했다.

쉘터 옆의 위태로운 계단을 가까스로 내리며 출발하자 어제 걸었던 남쪽 방면 등산로만 보이고 북쪽 길이 없다. 

혼란스러움으로 쉘터 앞쪽에 길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힘들게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가서 살펴보니 쉘터 정면의 언덕 밑에 북진 방면 등산로가 숨어 있었다.

 첫출발부터 길을 헤매고 산길을 접어 짧게 오름길을 만나고 내리막길에 도달하니 왠지 조금 전의 기온과 다른 서늘함으로 온몸이 오싹했다. 

마치 한여름에 동굴 속을 들어가면서 느끼는 온도 차가 감지되었다.

갑자기 숲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등산로 양쪽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담처럼 도열하였다. 이정표에는 AT의 험준한 길로 유명한 마후썩 나치 Mahoosuc Natch 트레일이다. 

이곳은 바위 속으로 지나는 일명 지하철 등산로이다. 

이제 길은 없어지고 오직 바위에 칠해진 흰색 블래이즈를 찾으며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바위에 올라서니 아래는 바위 절벽이고 그곳을 조심히 내려가면 다시 길이 막혀 있다. 

흰색 블래이즈 대신에 흰색 화살표가 있는 곳은 바위틈으로 난 바위 동굴로 가야 했다.

바위 동굴은 좁아서 배낭을 내려서 먼저 바위틈으로 밀어 넣고 나도 들어가니 다시 바위 위로 올라서 지상으로 통한다. 

잠시라도 블래이즈를 이탈하면 바위직벽이 나타나서 포기되어 되돌아가는 것은 더 어려운 위험이 있어서 반드시 블래이즈를 따라가야 했다.

바위 아래에는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흰색 블래이즈를 믿고 따라 전진하였다.  오늘은 비 없는 날로 다행히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수월하였다. 

바위굴, 바위 절벽을 타는 동안 긴장의 연속이 4.8 km ( 3 mi ) 동안 이어졌다.

이런 지하터널 바위 타기 끝자락에서 마주 오는 소보하이커들을 만났다. 

그들은 지금 내가 걸어온 바위 터널을 이제 시작하여야 하니 그들도 걱정되어 길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 구간이 험준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은 비바람이 없으니 천천히 진행하면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고 주의점은 반드시 흰색 블래이즈를 따라가야 하며 그 외의 길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해 주었다.

하이커들은 마후썩 Mahoosuc 등산로는 정말 썩스 sucks 하다며 형편없고 말도 안 되는등산로라고 농담하였다. 

이 길의 닉네임으로 서브웨이라고 불리고 어떤 하이커는 험준한 카타딘산 전지훈련을 하는 곳이라고 하기도 한다.

험준한 코스를 무사히 성공한 기쁨도 잠시이고 눈앞에는 급경사지지의 흙길과 미끄러운 바위 언덕이 위험을 도사리고 있었다. 

특별히 잡을 것도 없어 길옆의 바위나 빈약한 나무뿌리를 잡고 오르기도 하고 마주 오는 하이커가 있다면 서로 기다려 주어야 하는 고약한 길을 만났다. 

이 길도 역시 마후썩 산자락으로 위험한 길이였다.

오름길이 온통 바위로 이루어지고 나무가 없어서 오름길에서 온전히 바위를 잡아야 하였다. 

바위 길의 정상 부분에서 잠시 안도의 휴식으로 산 아래를 조망하였다. 

비바람을 피하여 낮게 자란 소나무 향을 맡으며 점심을 먹으니 땀이 식고 상쾌한 공기가 재충전시켜 주었다.

이제 호수를 만나고 숲으로 난 가파르고 깊은 협곡의 내리막길을 미끄럽게 내려야 했다. 

급경사지에서는 숲의 나무 틈으로 우회한 하이커들의 발자취가 보였고 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의 오솔길에서 야생 메추라기를 만났다. 

나를 보고도 한참이나 등산로를 앞장서서 걸었다.

또 다른 호수를 지나고 다시 계곡을 건너 물을 정수하고 가늘게 떨어지는 실폭포를 나란히 하면서 걸었는데 가냘픈 폭포와는 달리 길은 불안정한 흙길로 한없이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오전부터 흐린 날씨가 점점 짙은 구름으로 하늘을 가리고 숲은 어두워졌다.

오늘도 날씨로 서둘러지고 몸은 무거워서ME-64번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마을을 가려는 계획은 산에서 이미 오후 5시가 훌쩍 넘어서 포기되었다. 

길 옆의 작은 야영지에서 오늘밤의 보금자리가 되고 비상으로 둔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허기진 배를 더 배고프게 만들었다.

허전한 배를 달래며 텐트에 눕자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텐트에 눕는 순간 비가 오는 것도 오늘의 행운이다. 

도로에서 간간히 차량 소리와 빗소리로 숲의 밤은 깊어갔다.

 

 

 

      * 풀구스 쉘터 Full Goose 

 

          * 쉘터 옆에 설치된 음식 보관함, 베어탱크

 

 

      * 야생 메추라기

 

       

 

       * 험준한 바위군집 등산길

 

       * 서브웨이라는 애칭을 가진 바위 속 등산길

 

 

 

 

 

* 한증막에 투숙한 호스텔 -메인 주

8-2 목 147일째 비 맑음 누적 3,095.9 km ( 1,923.7 mi)

휴먼 내추럴 Human Nature 호스텔 27박째 숙박. 

이동 0.2 km ( 0.1 mi )

 

 아침도 못 먹고 텐트를 접고5분 정도 걸어서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지만 전화가 불통이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울 때 주차장에 도착한 트럭은 소보하이커를 내려준 호스텔 주인이었다.

이곳에서 베델타운까지 12마일이고 태워주는데 마일당 2불을 받는다고 하여 20불을 지불하고 베델에 있는 마켓에 도착하였다. 

시장을 보기 전에 숙소 예약을 시도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숙소마다 빈방이 없고 호텔이 2군데 있지만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기엔 200불의 숙박료로 비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 주가 이 작은 도시의 축제로 외부 방문객이 많아서 숙소가 동이 났다고 하였다.

태워준 호스텔의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운영하는 산속의 호스텔로 가기로 하였다. 

아주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호스텔에서 요리할 음식 재료와 숲에서 먹을 식품을 구입했다.

 

호스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풍성하게 만들어 먹고 RV에 숙소를 잡은 씽잉시스터 부부는 오늘이 결혼 40주년이라고 축하케이크를 나누어 먹자고 하였다. 

별채의 하이커까지 모여서 함께 축하하며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다.

  이 호스텔의 침실은 에어컨시설이 없고 창문이 닫힌 쪽창에 달아 둔 작은 선풍기뿐이었다. 

더위에 강한 나도 견디기 힘들어 새벽 1시에 에어컨이 가동되는 1층 부엌의 소파에 누우려고 내려갔더니 이미 한 하이커가 소파에 자리 잡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 일정을 짧게 걷는데도 바위 타기로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열이 났다. 

호스텔에서 피곤을 풀기는커녕 한증막 같은 찜통 방에서 잠을 설치는 긴긴밤이 되다.

  

 

 

* 메인 주에 있는 베델 마을

 

 

      * 호스텔에서 씽잉시스터 부부는 결혼 40주년 축하                  

 

* 산에서의 행동식 -메인 주

8-3 금 흐림 가랑비 148일째 누적 3,105.2 km ( 1,929.5 mi )

프라이 나치 Frye Notch 린투. 이동 9.3 km ( 5.8 mi )

 

호스텔에서 유료 아침을 제공하였지만 구입한 음식이 많아서 스스로 아침을 챙겨 먹고 하이커 박스에 있는 라면을 비상용으로 챙겼다.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로 멀었지만 드라이버길이 아름다워 지루하지 않았다. 호스텔 주인은 켄터키 주에 태어나고 자랐으며 메인 주의 남편을 만나 결혼 이후는 메인 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캔터키 주와 메인 주에 살아보니 서로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켄터키 주는 4계절이 뚜렷하여 좋고 메인 주는 10월의 단풍이 아름다워요.”

“메인 주로 여행 올 계획이 있다면 꼭 10월 초에 오세요.”

“또 메인 주는 어디서나 차갑고 물맛 좋은 수자원이 풍부하답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메인 주는 숲의 물도 맑고 이끼를 품고 나오는 물은 모두 옹달샘처럼 물맛이 좋았다. 

그리고 숙소마다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고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어젯밤 더운 방에서 밤새 잠을 설쳐서 피곤하고 음식을 채운 무거운 배낭으로 고단한 산행이 되었다. 

 숙소에서 출발하는 날은 배낭이 무거워 음식물 먹는 순서도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게 된다. 

가장 먼저 과일과 호스텔에서 만든 음식물을 먼저 먹고 호스텔에서 만든 음식도 가급적이면 물을 넣지 않고 자체수분으로 만들어야 잘 상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먹어야 하는 것이 공산품 중에서도 수분이 함유된 치즈 스틱, 빵 종류이다. 

세 번째로는 쨈, 견과류, 비스킷 류이고 마지막으로 건조된 아웃도어식품과 라면, 참치팩이다.

건조된 아웃도어 음식은 먹으면 고칼로리이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지만 짜고 조미료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일본 라면은 크기가 작고 휴대하기 가벼워 작은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일본 라면으로는 허기로 다른 간식을 추가로 먹어야 했다. 

그리고 매일 프로틴바와 열량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 바 종류를 먹고 비 오는 날은 이것으로 아침을 먹을 때도 많았다. 또 이온 농축 음료와 사탕, 젤리, 껌을 추가로 소지하였다.

일반 음식은 큰 마켓을 만나면 과일류, 채소류, 고기류, 견과류 등을 구입하고 작은 병의 올리브오일과 말린 허브를 소지하기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볶은 소금으로 호스텔에서 요리해 먹었다. 

아침식사로는 빵에 잼이나 꿀을 바르고 그 위에 코코넛가루나 해바라기 씨앗을 뿌려 먹었다. 

꼭 밥을 선호한다면 큰 마켓에서 건조된 쌀과 야채가 섞인 건조식품이 있지만 무게가 무거운 것이 단점이다. 

쌀이 든 식품은 한국의 일반적인 밥과 다른 이탈리안식이다.

나는 장기 도보여행 중에도 한국식 밥이나 김치에 대한 그리움이 없어서 한국음식에 대한 고충은 별로 없었다. AT 종주하는 동안 버지니아 주에서 두 딸을 만나서 한국 식당의 고깃집에서 먹은 저녁이6개월 동안딱 한 번의 한국식 밥을 먹었다.

공군으로 한국에 1년을 살았다는 어르신 하이커는 나에게 김치가 그립겠다고 말했다. 

나는 AT종주동안 김치가 그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그의 질문에 그때 김치 생각이 났다.

“많은 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하지만 저는 싱겁게 먹는 타입이라 김치가 없어도 괜찮니다.”

“한국 사람인데 다르네요.” 

“하지만 집에서는 내 가족이 먹을 김치는 직접 만들어요.” 

“역시 한국인 여성들은 모두 요리사군요.” 

그는 한국여성의 근면성과 가족 사랑에 대하여 칭찬해 주었다.

쉘터에서 한 미국인 젊은 하이커는 간식으로 생라면에 수프를 뿌려 먹었다. 

그 방법을 어디서 배웠냐고 내가 물었더니 대학 동창인 한국인 친구에게 배웠다며 이번 산행에서 이렇게 먹고 물을 마시니 시간도 절약되었다고 한다. 

AT에서저마다 이겨내는 지혜가 총동원되는 것도 재미있다.

하이커들은 스스로 선택한 도보여행이지만 열악한 환경을 장기간 견디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들기도 하다.

 나도 전혀 먹지 않았던 인스턴트 음식을 매일 먹으며 그것은 종주할 때까지 소중한 음식이 되었다. 

사람은 어떻게라도 살아나게 되고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 머물 쉘터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곳에 개봉하지 않은 땅콩버터잼이 있었다. 

누군가가 많은 음식 공급으로 배낭이 무거워서 다른 하이커를 위해 놓고 간 것이다.

 가끔 쉘터에도 하이커 박스가 따로 없지만 불필요한 물품은 다른 하이커들을 위하여 두고 가기도 한다. 

쉘터와 등산로 간의 경사진 곳에 텐트를 치고 일찍 휴식하였다.

   

 

*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휴식

 

* 개울물 건너기 미션 -메인 주

8-4 토 비 맑음 149일째 누적 3,113.4 km ( 1,934.6 mi )

등산로 옆 야용장. 이동 8.2 km ( 5.1 mi )

 

밤새 장마철처럼 비가 내렸고 경사진 곳이어서 빗물이 잘 빠질 거라는 기대로 비가 멈출 때까지 누워 있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텐트 밖은 흙탕물로 젖었고 텐트 안에도 빗물이 흥건하였다.

젖은 슬리핑 패드를 접고 짐을 꾸리고 텐트 속에서 비가 약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배낭을 쉘터로 옮겼다. 

흙투성이와 물구덩이에서 텐트를 건져 쉘터 처마에 걸었다.  

비가 그치지 않아서 속수무책으로 쉘터에서 발이 묶였다. 

쉘터에서 지난밤을 보낸 소보 하이커는 조지아 주의 스프링어산에 크리스마스날 도착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막 비를 맞고 도착한 소보하이커가 이곳까지 오는 길에 개울물이 불어서 물을 건너는데 물살이 세고 허벅지까지 차서 위험하며 등산로는 온통 물이 흘러내려서 작은 웅덩이 길이 많다고 한다.

강물이 키 큰 남자 하이커의 허벅지까지 물이 찼다면 나는 어찌 건너야 하는지 그냥 오늘은 이 쉘터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난감하였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몸이 젖어서 춥다고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11시쯤 비가 그치면서 해가 나오고 더 이상 비가 안 올 것 같았지만 기상상태를 더 보기로 하였다. 

텐트를 씻으려고 개울에 내려가니 갈색으로 변한 계곡물은 어제저녁보다 더 많은 수량으로 무섭게 흘렀다. 

텐트, 장갑, 젖은 것들을 모두 빨아서 임시 빨랫줄을 만들어 걸쳤다.

 

해가 구름을 뚫고 나오니 짙은 구름은 금세 사라졌다. 

텐트의 물기만 걷어내고 다시 짐을 꾸려 나도 출발하였다. 

등산로는 물길로 신발이 젖기 시작하고 어떤 길은 연못으로 둔갑해 있었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지만 등산로는 지난밤 폭우로 혼란스럽고 산 아래의 계곡마다 갈색 물거품을 내고 흘렀다.

이제 던나치폭포 위의 개울을 만나서 이 개울물 건너야 하는데 폭포가 떨어지는 속도에 의해 폭포 위의 물살도 빨랐다. 

계곡 아래 폭포는 깊은 바위협곡의 절벽으로 폭포는 회오리처럼 휘감고 떨어졌다. 

아침보다는 물이 줄어들었지만 갈색빛 물줄기가 나를 위협하였다. 

작은 폭포와 무시무시한 큰 폭포 사이의 개울을 건너는데 두려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소보로 향하는 하이커들이 모두 개울 앞에서 배낭을 제 점검하느라 분주하고 한 사람씩 건너는 것을 서로 지켜 봐 주느라 개울가는 정체되었다. 

나는 인내심으로 꾸준히 걸을 수 있다고 AT 도보여행을 시도했는데 이렇게 물에 빠지는 위험도를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운 미션은 내 심장이 오그라들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소리는 나의 용기마저 상실하게 하였다.

건너온 소보 하이커가 중간의 거센 물살만 조심하면 된다고 하였다. 

배낭의 끈을 바짝 졸라매고 배낭을 내 등에 최대한 밀착시키고 하이킹 스틱을 길게 하고 등산화를 신은 체 물속으로 들어가니 갈색물은 차가웠다. 

개울물에 발을 넣는 순간 몸이 썰렁하면서 등산화 속으로 들어오는 탁한 물이 내 발을 침범하였다. 

마치 얼굴 없는 유령이 내 몸으로 파고드는 불편함이 몰려왔다.

개울의 중간 부분에 들어가니 하이킹 스틱이 푹 빠지고 물살은 내 허벅지에서 모카커피 같은 거품을 내며 반바지를 점령하였다. 

다시 다른 발을 내딛자 미끄러운 돌은 나의 등산화와 화합하지 못하여 발의 중심을 잡기 위해 비비듯이 발을 비집어 착지하고 가까스로 강어귀에 도착하자 안전하게 탈출했음을 예감하였다.

개울물을 건넜지만 어지러운 물살은 파장이 되어 내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릴 때 지켜보던 하이커들이 박수를 쳤다. 

개울물 건너기 미션 이후 이동하는 등산로마다 물이 무릎까지 차서 등산화를 철벅거리며 걸었다.

 다시 새로운 오름길이 시작될 때 기온이 오르자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한 하이커는 해가 떠자 뱀도 보인다고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그는 소방 도로에서 오늘은 예약한 호스텔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무료셔틀을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요즘은 하루 걸러 한 번씩 뱀을 만나서 각별히 조심한다. 

뱀을 자주 만나지만 뱀이 먼저 사람을 인식하면 스스로 소리를 내서 위험은 없었다. 

나는 방울뱀만 소리 내는 줄 알았는데 일반 뱀도 사람을 먼저 인식하면 뱀 특유의 움직이는 소리를 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계곡의 물줄기는 산 아래를 가르며 세차게 흐르고 그 소리도 요란하다. 오늘도 그 소리와 함께 습한 기운을 품은 숲에서 고단한 몸을 눕혔다.

            

 

* 밤새 내린 비로 젖은 텐트를 말리며 쉘터에서 비가 멈추길 기다림

            

 

* 계곡 아래 협곡으로 떨어지는 폭포 

         

 

 

* 계곡물을 많이 건너야 하는 메인 주

 

* 숲 속의 주인들 -메인 주

8-5 일 맑음 150일째 누적 3,136.0 km ( 1,948.6 mi )

캠핑장. 이동 22.5 km ( 14.0 mi )

 

어젯밤 내린 많은 강우량은 숲을 적시어 빼곡한 나무 사이로 내리는 아침 햇살은 숲의 미세한 물 입자를 투과하여 숲의 분위기를 감미롭게 만들었다. 

등산로로 비치는 아침 햇살은 빛의 파장을 만들어 움직일 때마다 다른 빛깔로 보였다. 

무거운 습기와 가벼운 햇살의 중간 대기층은 몽환적인  은빛 파장을 따라 몸도 배낭도 무게를 초월하여 깃털 같은 무중력으로 걸었다.

이른 아침에 만난 호수도 역시 침묵으로 고요하다. 

그 호수의 경계 위로 보이는 푸르름도 숙면 중이다. 다만 햇살이 안개의 침묵을 일깨워 그것으로 운무는 시나브로 공기가 보이는 듯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폭우로 하이커들에게는 미끄럽고 불편한 산길이지만 비 온 후의 숲은 활기차다. 

하룻밤 사이에 폭포와 계곡은 더 힘차게 흘러 스스로 정수하고 있었고 숲의 식물도 생물도 바쁘게 움직이고 거미줄도 하늘하늘 빗물에 끊어질 듯 매달려 그들만의 생존을 위한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활짝 피었던 야생화는 어느새 그 열매를 여물기 위해 햇살을 담기 바쁘다.

돌길을 하염없이 내리고 때로는 철근사다리에 몸을 의지하며 오르고 그렇게 걷다가 산 정상에 서면 뻥 뚫린 조망권의 멋진 풍광이 보인다. 

산아래 흐르는 강과 숲을 따라 인간이 만든 자동차 길이 가느다란 여인네의 허리선처럼 굽이굽이 숲을 가르고 있다.

저 산 아래까지 도착하여야 했다. 바다에는 망망대해의 쪽빛 물결이 일렁이듯이 숲도 내려다보면 푸른 녹음이 바다와 다를 바 없었다.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넓게 만들어 주고 숲은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깊게 만들어 준다. 

나는 숲을 내려다보면서 깊어가는 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은 나무는 죽은 대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지가 되고 또 다른 개체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래서 나무는 죽었으나 살아 있는 듯하다. 

비의 기운으로 형형색색의 버섯은 자연의 독과 덕을 품어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독이 있어서 인간에게 해를 주거나 덕이 있어 인간에게 유익을 주거나 모든 버섯의 이유 있는 삶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나는 버섯에 대한 짧은 식견으로 그저 사진에 담아 감상의 득만 취하여도 즐거웠다. 

어떤 산맥에는 보라색 버섯이 군집하고 또 다른 산자락에는 나팔 같은 버섯이 그 관속에 빗물을 저장하여 생명유지의 지혜를 담고 있다.

 어떤 버섯은 죽음 직전의 흉물스러운 속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두려웠다. 

샛노랗고 납작한 버섯 뒤의 기하학적인 문양은 자연의 완벽을 표현하고 노란 갓 모양으로 그 위에 흰 설탕을 뿌린 듯한 앙증스러운 버섯은 금방이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나올 것만 같다.

 검은 버섯도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고 백옥같이 하얀 버섯은 어두운 숲의 조명이 되었다. 

갈색의 둥글넓적한 버섯은 팬케이크 같아서 굷주린 허기가 밀려온다. 

노랗고 작은 버섯은 산발적으로 자라서 마치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지로 착각하게 하였다.

나뭇가지 모양으로 땅을 뚫고 나온 다양한 색깔의 보라색, 노란색, 흰색의 버섯은 바닷속 산호초를 상상하게 하고 새빨갛고 앙증스러운 버섯은 보고만 있어도 질투의 독기를 공기 중으로 쏘아대어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말발굽버섯은 울퉁불퉁한 검회색의 상단에 비해 그 하단은 백옥 같은 미인의 피부보다 더 완벽한 순백을 품고 있다. 

누가 흰색을 무채색이라고 하였던가! 이는 분명코 사람이 만든 이론이다. 

이 버섯의 흰색은 눈부시게 화려하여 그 어떤 색깔도 감히 색을 논하지 못할 영롱한 속살의 유혹이 밀려온다. 

나는 그 유혹을 참지 못해 살짝 만지면 금방 상처가 되어 멍이 든다.

또 버섯도 아닌 듯 나무도 아닌 듯 적당히 마른 버섯은 가장자리에 주름을 만들어 꼬불꼬불 지점토로 빗은 예술작품 같다. 

이 버섯은 저마다 모양과 문양이 달라서 마치 내 어머니의 한복에 달았던 브로치와 닮았다. 

이것은 나에게 가장 신기한 버섯 중 하나가 되었다.

이리 봐도 양송이버섯 같고, 저리 봐도 목이버섯 같고, 아무리 보아도 느타리버섯 같고, 다시 봐도 석이버섯 같고, 우리가 흔히 먹는 버섯과 서로 닮은 버섯이 즐비하다. 

산 개미도 버섯을 먹고 다람쥐도 제 몸보다 더 큰 버섯을 껴안고 먹으며 숲을 누빈다. 

미국 하이커들은 산에 있는 모든 버섯은 독이라고 생각하며 관심도 없다. 

그러나 나는 독버섯조차 신비롭고 아름답고 고고하여 흥미롭다.

등산로에서 버섯 삼매경에 빠져 사진을 찍을 때 CD 가 왔다.

내가 농담으로 그에게 말했다.

“누군가 먹은 흔적이 있는데 우리도 배고프니 저 버섯을 먼저 먹어 봐요.”

그는 농담인 줄 알면서도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모하비가 먼저 먹어요.”

“이 버섯은 누군가가 먹은 흔적이 있으니 독버섯이 아닌 게 분명해요.”

“개미가 먹은 것 같은데 먼저 보시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또 대답했다.

“아마도 들쥐가 먹고 숲 속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 거요.”

그때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큰 버섯을 먹고 있다. 몸이 빠른 다람쥐이지만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버섯을 두 손으로 들어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못한다. 

이것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걸으니 CD는 이것을 본 이후 나를 만날 때마다 그 다람쥐를 걱정하였다.

“그 다람쥐 죽었을까요?”

“그 다람쥐 지금쯤은 몸보신하여 더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프라버블리, 죽었을지도...”

그는 ‘Probably’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또 하였다.

“동물이 얼마나 감각적인데요?”

“아무 걱정 말아요. 독버섯이라면 다람쥐가 절대로 안 먹었어요.”

“프라버블리,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오늘은 와이맨산, 홀산, 무디산, 올드블루산, 무려 4개의 산을 오르고 내렸으니 이제 산신령이 될 법도 하다. 

프라버블리, 산신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전히 그 도를 다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씨가 청명하여 하늘과 맞닿은 정상에 서서 산세들을 두루 살펴보는 신선 같은 유람을 즐긴 멋진 하루였다.

            

 

* 운무를 가르며 등산로를 비추는 여명

              

 

* 안개를 품은 아침 호수

      

 

* 녹음으로 뒤덮은 숲

 

 

 

 

 

 

 

 

 

 

 

 

 

 

 

 

 

 

 

 

 

 

 

 

 

 

 

 

 

 

 

 

 

 

 

 

 

 

 

 

 

 

 

 

 

 

 

 

 

 

 

 

 

 

 

 

 

 

 

 

 

* 형형색색의 다양한 버섯류

 

* 지천인 블루베리 -메인 주

8-6 월 맑음 소나기 151일째 누적 3,156.1 km ( 1,961.1 mi )

사배드데이 연못 Sabbath Day Pond 린투. 

이동 20.1 km ( 12.5 mi )

 

어제는 캠핑장을 찾지 못하여 애를 먹었다. 

숲이 깊고 빼곡한 전나무 사이로 하이커가 보여 전나무를 비집고 등산길을 이탈하니 전나무뿌리와 이끼뿐인데 더 들어가자 작은 야영 흔적이 있어서 쓰러진 전나무 너머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자마자 어두웠는데 아침에 보니 수령이 오래된 전나무가 하늘을 찌르듯 곧게 자라서 빼곡한 전나무 사이로 이끼는 겹겹이 자라서 융단 같다. 

사진으로 온전히 담지 못하여 마음으로 전나무의 기백을 음미하고 등산로에 복귀하니 길 옆에 옹달샘이 보였다.

첫 정상의 산 아래에 폭넓은 강은 많은 섬을 품고 있다. 

어느새 소나무와 짙푸른 이끼는 사라지고 햇살을 이고 바위를 걸으니 메마른 곳에서 산호초 같은 이끼가 있다. 

그 모양도 아름답고 밟으면 바스락 부서진다. 

그 빛깔은 오묘한 비취색으로 비 오는 날에는 이 이끼가 물을 한껏 흡수하여 마치 스펀지같이 부드러워진다. 

선인장의 원리처럼 물 흡수력이 좋고 이 이끼에 햇살이 투영되면 옥색의 틈 사이로 노란 햇살을 품어 신비한 빛을 연출하였다.

이 이끼는 주로 큰 바위와 소나무사이에 자라고 그 틈으로 블루베리나무가 자생하였다. 블루베리나무는 바위 위로 내리쬐는 강한 햇살을 받아서 그 열매를 잘 맺게 하였다. 

블루베리가 있는 곳에는 늘 이런 환경의 둥그런 바위와 옥색 이끼가 함께 있었다. 

길 옆으로 물 많은 곳에서 자라는 블루베리 나무는 건강하지만 열매는 거의 없었다.

배낭을 내리고 따가운 햇살을 등지고 블루베리를 따서 빈 물병에 채웠다. 

처음 산딸기를 만났을 때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뭉그러졌지만 물병에 보관하니 따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극대치다.

산행을 해야 하는 마음과 홀로 블루베리를 따는 두려움이 공존하여 다시 길을 떠났지만 다시 블루베리가 나를 유혹하였다. 

한 병을 채우고 길을 걸으면서도 손에 닿이는 대로 따서 입으로 넣었다. 

만나는 하이커들마다 ‘블루베리 땄어요?’ 

‘블루베리 먹었어요?’ 

오늘의 주메뉴 인사가 되었다.

AT 하이커들은 도보여행 중에 산의 어떤 나무도 훼손하지 말고 어떤 식물도 채취하여 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이것은 숲에서 비슷한 식물이 자생하여 확실한 것이 아닌 것을 먹어 해가 될까 봐 우려하여 먹지 말라는 규정이다. 

하지만 산딸기, 블루베리가 많이 자생하는 지역은 지도책에도 비닐봉지를 준비하라고 한다. 

절대 먹지 말라고 하지만 누구나 아는 산딸기, 블루베리 자생지역에는 이 과일을 따 먹는 즐거움으로 자연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

뉴햄프셔 주의 북단과 메인 주의 남단 부분이 AT 길 중에 어려운 코스 중 하나이다. 

그리고 메인 주의 최북단 카타딘산 전방을 제외하고 메인 주의 등산로 전체가 엘리베이션게인이 높아서 가파른 오름길과 절벽 같은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어서 하이커들을 지치게 하였다. 

이에 한여름의 더위까지 가세하여 매일 힘에 부치는 고된 산행은 하루 16 km ( 10 mi ) 이동조차 어려웠다. 

오늘은 블루베리 따기로 한 시간 이상 늦어 버렸다.

산맥의 끝자락 소방도로에서 트레일-매직을 만났다. 

두 부부가 핫도그, 햄버거를 만들어 주었고 간식으로 바나나, 비스킷을 먹었다. 

그들은 의자도 많이 준비하여 하이커들은 오랜만에 의자에 앉아 휴식하였다. 

트레일-매직인 블루스는 메인 주에서 눈썰매에 대한 이야기로 흥분하였고 그의 아내는 하이커들에게 먹거리를 챙겨주기 바빴다. 

블루스는 나를 보고 동양인을 처음 만났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오늘따라 내 영어발음이 너무 완벽했던가! 

그가 헷갈려했다. 엘에이에서 오래 살았으면 한국을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며 나와 다른 삶의 스토리를 상상했다.

“엘에이에서 오래 살았으면 한국은 잘 모르겠네요?”

“저는 40년 넘게 한국에 살다 도미하여 내 조국, 한국을 미국보다 더 잘 알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 나이가 지금 40이 넘었다는 이야기군요?” 

그는 또다시 내 나이에 혼란스러워하였고 나를 아는 하이커들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긴 설명 대신에 내 모자를 벗어서 5개월이 넘도록 염색하지 못하여 백발이 된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블루스와 친구 존과 그의 아내도 나의 하얀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블루스의 아내는 가까이 와서 하얀 내 머리카락을 확인하였다. 

내 나이를 아는 도저도 웃고 다른 하이커들도 덩달아 웃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존은 나에게 살짝 물었다.

“모하비님, 도대체 몇 살이요?”

“55살입니다.” 

내가 크게 말하자 한바탕 웃음소리가 숲을 울렸다. 

트레일-매직을 만나서 배부른 포만감과 즐거운 수다로 피곤이 풀렸다.

등산로에 복귀하자마자 큰 강물이 가로막고 나타났고 비로 계곡물이 불어서 징검다리가 소실되어 오늘은 3번이나 강물을 건넜다. 

젖은 등산화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니 발가락이 쓰라리게 아파왔다. 

아픈 발가락의 투정도 잠시 산 위로 오르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금방 쉘터가 나올 것 같았지만 쉘터는 보이지 않고 다시 깊은 절벽을 내리는 위험천만의 내리막길이 나오면서 그 아래는 별장을 낀 드넓은 호수가 평화로워 보였다. 

비가 그친 흐린 날씨와 늦은 오후의 숲은 어둡고 절벽을 내딛는 흙길은 미끄러웠다. 

호수에 도착하자 길 옆으로 멋진 모래사장과 운치 있는 벤치가 보였다.

오늘 일정은 이 호수에 일찍 도착해서 수영하고 흘린 땀을 씻는 것인데 해가 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 수영은 엄두도 못 내고 캠핑장을 먼저 찾았다. 

호수 옆 숲에 텐트를 친 하이커는 바로 에펙과 그의 친구가 비치호수에서 수영하였다고 했다. 

도저와 내가 놀란 것은 그가 산에서 다치고 나아서 다시 AT로 복귀한 것이 더 환영할 인사였다. 

에펙은 다시 걷기 힘들 것을 대비하여 친구와 함께 걷는다며 그는 여전히 열정이 넘쳐 보였다.

쉘터로 들어가니 평상 위의 야영지는 이미 하이커들이 차지하였고 쉘터아래의 호수와 인접한 곳에 텐트를 쳤다.

 발가락을 해드램프로 비추어 보니 3일간 젖은 등산화를 신고 걸어서 발가락에 핏물이 맺혀 있었다. 

내일 걷는데 지장이 없도록 등산화부터 말리기 위해 신발 속에 휴지를 넣고 잠을 청하니 또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 물을 머금으면 부드럽고 건조한 날은 부서지는 이끼

 

 

 

 *  바위 위에 자생하는 이끼 

 

 

 

* 등산로 양쪽으로 자란 야생 블루베리 나무

 

 

* 자생하는 블루베리

 

 

 

* 오늘 저녁은 블루베리 만찬

 

 

 

 * 두 부부가 열고 있는 프래일-매직

 

 

 

* 길 위의 트레일-엔젤 -메인 주

8-7 화 맑음 소나기 152일째 누적 3,171.2 km ( 1,970.5 mi )

랜젤리 Rangeley타운 28박째 숙박. 이동 15.1 km ( 9.4 mi )

 

아침에 일어나니 발가락이 발진하여 벌겋게 부어 있었다.

 발가락에 연고를 발랐지만 피멍은 물집보다 더 쓰라리게 아팠다.

발가락 통증으로 힘들게 이동하여 호수를 끼고 있는 큰 캠핑장에 도착하였다.

 이 캠핑장은 규모가 크서 화장실도 있고 많은 하이커들이 야영하고 리틀 스위프드 호수를 끼고 있었다. 어제 내린 소나기로 길은 웅덩이가 많았다. 

가까스로 이른 오후에 ME-4번 도로의 큰 주차장을 만나서 호스텔로 가려고 발을 말리기 위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젖은 양말이 발가락에 스치어 핏물이 고여서 발을 빨리 건조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강을 건널 때 번거롭게 시간이 걸려도 등산화를 벗고 건너야겠다.

4번 도로를 걸어서 반 마일에 위치한 호스텔을 찾았고 짧은 거리지만 배낭을 지고 슬리퍼를 신고 걷는 것은 발바닥의 무리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호스텔입구에는 방이 찼다는 안내 글이 크게 적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발가락이 아픈데 호스텔에서 오늘밤 쉬겠다는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져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 버렸다. 

호스텔 입구를 꽃으로 잘 꾸며둔 작은 화단 옆에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먹으며 새로운 계획을 생각했다. 

큰 마을까지는 15 km ( 9 mi ) 걸려서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 거리이다.

 

점심으로 브리또 한 입을 먹을 때 호스텔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나왔다. 

나는 현지정보라도 알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자동차 속의 여인은 호스텔의 주인이다. 

그녀는 노보여행자는 지금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몸이 손상되어 자주 쉬어 가려는 하이커들이 많아서 요즘은 호스텔이 매일 만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장 가는 길이라며 마을의 숙소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다. 

여름의 메인 주는 다른 주에서 여행온 피서객이 많아서 숙소마다 방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마을의 호텔도 예약 완료된 곳이 많다고 하였다.

 마을에 도착하자 호수를 낀 도로를 걷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마을과 호수에 정박된 배가 평화롭게 보였다.

그녀는 한 숙소 앞에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방이 있는지 먼저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숙소는 역시 그녀의 예상처럼 남은 방이 없었다. 

다시 그녀의 자동차를 타고 도로 주변의 마켓, 우체국, 아웃도어용품점의 위치를 설명 들으며 또 다른 숙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또 기다릴 테니 방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라고 했다.

가까스로 체크인하고 나는 그녀에게 고마운 표시로 산에서 따온 블루베리를 권했더니 그녀는 무겁게 짊어진 나의 노고로 받지 않고자 하는 마음과 뭔가를 답례로 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며 산에서 따온 귀한 블루베리이니 조금만 맛보겠다고 했다.

속 깊은 마음씨를 가진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틴이고 메인 주의 ‘하이커 허트 호스텔’ 주인이다. 

그녀 덕분에 쉽게 숙소를 찾았고 숙소에 들어서자 낯익은 하이커들이 보였다.

 5월 하순에 만났던 아이언맨을 다시 만났다.

 그는 AT길을 조금만 엇갈려도 길을 찾으면 다시 원래 걸었던 길로 되돌아가서 걷는 정직하고 올곧은 청년이다. 

펜실베니아 주의 피츠버그에 사는 그는 2명의 여자친구들과 그룹으로 다녔는데 여자친구 둘은 모두 포기하였다고 한다. 

장거리 도보여행이 얼마나 많은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한 것인지 마음으로 와닿았다. 

아이언맨 옆에 앉은 중년을 훨씬 넘긴 하이커는 아시아 문화를 사랑하는 미국인으로 트레일 네임이 부다이다.

그는 나를 보며 장난기 어린 질문을 하였다.

“모하비는 AT를 난생처음 하지요?”

“당근이지요”

“앞으로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지요?”

“아 그것도 당근이지요.”

“그럼 부다님은 여러 번 하셨어요?”

“나는 이번이 3번째 라오.” 

그는 의외의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가 이 험준한 길을 올해로 3번째 하고 있는다는 말에 놀랐다. 

갈 곳도 많은데 똑같은 길을 여러 번 걷는다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같은 길을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AT 가 끝나갈 쯤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길에서 만난 식물과 동물과 하이커들이 그리울 것 같다. 

내가 만약 AT를 다시 한다면 그 길의 아름다움을 더 음미하며 걷고 더 세심하게 자연을 관찰하고 더 멋진 사진을 찍을 것이며 새롭게 만나는 하이커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AT 종주를 끝낸 지금은 AT를 여러 번 걷는 하이커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숙소에는 세탁장이 없고 마켓이 멀었다. 

이 숙소는 하이커들에게 업무용 트럭을 타도 좋다고 자동차 열쇠를 주어서 메인 주의 인심도 튼실하였으며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의 신뢰심에 감동했다. 

아이언맨이 운전하여 여러 명이 차에 타고 세탁장도 가고 시장도 보았다. 

세탁하며 기다리는 동안 한바탕 소나기가 또 내렸다.

비가 오지만 오늘밤은 실내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젖은 텐트를 말릴 수 있어 푸근했다.

 슬리퍼만 신고 다녀서 발바닥은 아프지만 발가락을 건조하는 데는 최고이다. 

복도에서 해 질 녘의 호수 위로 내리는 소나기는 어린 시절 방문을 열고 소나기를 보았던 그 추억이 생각났고 내 마음의 묵은 책장이 들추어졌다.

세상살이에 바쁘게 살면서 과연 이런 평화로운 순간을 느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세상으로 돌아가면 호수에 떨어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지금의 평화를 기억할 것 같다.

                 

 

              

 

 

                        * 좁은 등산로로 비치는 몽환적인 여명

            

 

                  * 계속내린 비로 물웅덩이로 변한 등산로

 

 

        * 잘 침대가 없다는 호스텔의 이정표 FULL SYSTEM    

         

 

 * 젖은 등산화로 온종일 걸어서 발톱이 빠지고 피가 맺힌 발가락

 

* 사람도 마을도 아름다운 -메인 주

8-8 수 맑음 153일째 누적 3,171.2 km ( 1,970.5 mi )

레인젤리 Rangeley 타운 29박째 숙박. 이동 0 km ( 0 mi )

 

조상 대대로 운영하는 이 숙소는 각 방마다 조용히 쉬는 독방,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호스텔, 가족끼리 머물 수 있는 독채, 등 다양한 숙박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건물 전체가 호수를 바라보고 길게 지어졌고 건물 중앙에 주인이 거주하였다. 

집 중앙은 테라스가 넓어서 호수를 조망하기 좋았다.

 호수와 건물 사이의 넓은 잔디에는 곳곳에 자리 잡은 벤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롭다.

 그 잔디로 오리가 노닐고 호수에도 오리와 백조가 유영하고 있었다. 정박된 배들과 버들나무는 호수에 반영 되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에메랄드 물빛을 따라 호수 정면의 지평선은 배를 타기만 하면 미지의 세계로 갈 것 같은 유혹이 넘실거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풍경을 꿈꾸는 휴양지의 모습이고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 것 같았다.

호수와 인접한 독채 건물에서 나온 미국인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

의 이름은 제임스이고 코네티컷 주에서 자동차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는 매년 이 숙소의 독채를 빌려서 일주일간 머물며 배를 타고 호수 멀리 나가서 강태공의 여유를 즐기며 여름휴가를 보낸다고 한다.

오늘 하루 제로데이를 하기로 하여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하여 피멍으로 아팠던 발가락이 빨리 회복되어 내일은 걷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마을을 구경 삼아 우체국에서 겨울 재킷과 그동안 기록한 메모와 구입했던 선물을 집으로 보내고 중국 식당에 들렀다. 

식당의 분위기는 중국과 타이 풍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재미있게도 요리사와 서빙하는 분은 미국인 부부이다. 

서양인이 동양 음식을 만드는 점이 이색적이다. 레인젤리 타운은 도로에 신호등이 없지만 관광객들과 하이커들이 많이 걸어 다녀도 운전자의 양보로 불편 없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강태공, 제임스님은 새벽에 호수로 나가서 고기를 잡았는데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나누어 줬다며 잡는 재미라고 하였다.

 내일 하이커 일행을 등산로 입구까지 태워주겠다고 자청하여 내일 교통편이 해결되었다.

길 위의 여행자는 다양하여서 자동차로 여행자, 자전거로 여행자, 두 발로 걷는 도보여행자, 그리고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식당에서 돌아오자 멋진 모터사이커들이 숙소 앞으로 줄지어 도착하였고 5 명의 사이커들이 차례대로 주차하는 모습이 멋지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자 나를 보며 미소로 화답하였다. 

그들도 오늘 저녁 이 숙소에서 묵을 거라고 한다. 

저녁에는 하이커들과 모터사이커들, 자동차 여행자인 노부부, 강태공 제임스까지 숙소의 복도에 앉아서 담소로 한여름밤은 깊어갔다.

  나는 해가 지고 모기 때문에 방으로 들어와 눕자 그들의 담소는 내 귀전을 간지럽혔다.

나는 메인 주로 다시 여행을 온다면 이 마을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이 마을의 아름다운 인심도 순박한 사람도 내 삶에서 자주 그리워할 것이다.

 

             

 

                      * 레인젤리 Rangeley 타운

             

 

                   * 숙소 호수의 풍경

            

 

 

                 * 모터 사이커들

 

* 숲 속은 한겨울 -메인 주

8-9 목 비 구름 강풍 154일째 누적 3,188.4 km ( 1,981.2 mi )

포플러 리지 Poplar Ridge 린투. 이동 17.2 km ( 10.7 mi )

 

이틀 밤을 묵고 아침에 출발하려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비는 멈출 기미가 없어 떠날 준비를 했지만 발이 묶여 복도에서 비 내리는 호수를 감상하였다.

 제임스도 밖으로 나와서 비가 오면 낚시를 못 가니까 정해진 시간에 안 떠나도 된다며 비가 그치면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11시부터 빗줄기가 약해지자 서둘러 등산로 입구로 출발하여 제임스님과 헤어질 즈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다.

일기가 불안정한 상태로 산으로 오르니 안개가 짙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그 바람으로 안개도 빠르게 산을 넘고 나는 산 중턱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람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안개비와 구름이 마치 살아있는 용이 승천하듯이 보였다.

산 정상에 당도하니 비는 그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정상에는 캐나다에서 온 대학교 1학년생들의 그룹하이커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의 풍광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그들의 꿈 많은 모습을 사진 찍어주고 다시 내리막길의 젖은 바위절벽의 하산이 쉽지 않았다.

오전부터 비가 온 여파로 쉘터에는 많은 하이커들이 머물고 있었고 곳곳의 야영지는 물이 흥건하였다. 

쉘터 앞으로 흐르는 물은 탁한 갈색이고 쉘터에서 더 전진하여 등산로 옆의 경사진 곳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는 중에도 바람은 계속 요동치며 텐트를 사정없이 흔들어 댔다.

 비 온 뒤라 기온이 하강하면서 부는 바람은 체감온도는 더 추웠다.

호스텔에서 아침의 장대비로 늦게 출발하였고 오름길의 비바람과 내리막길의 미끄러운 길에서 시간이 지체되어서 밤 8시에 저녁식사가 끝났다. 

계속하여 부는 바람은 숲의 소리가 되어 한여름의 추운 밤이 되었다.

        

 

* 캐나다에서 온 대학 1년생들  

 

 

 

* 비바람과 맞서 넘어야 할 산자락

 

* 물 좋고 경치 좋고 날씨 좋은 -메인 주

8-10 금 155일째 맑음 청명 누적 3,211.3 km ( 1,995.4 mi )

콜커설쿼 Corcker Cirque 캠핑장. 이동 22.9 km ( 14.2 mi )

 

다시 해가 나오고 청명한 날씨가 산을 오르기에 좋은 온도이지만 어젯밤의 바람으로 아침에는 한여름이 무색할 만큼 추워서 몸이 굳은 상태인데 설상가상으로 돌다리를 만나 개울물이 불어서 등산화를 벗고 건넜다.  

오늘 여정은 계곡물이 많고 물속을 건너고 길 옆으로 작은 폭포가 많았다. 

계곡물은 좁고 기다란 절벽 바위를 흘러 역동적인 폭포였다. 

이끼 낀 돌길을 지나서 진흙의 비스듬한 경사면은 불안하였다.

등산화를 벗고 계곡물을 건너고 약 4시간이 걸려서 정상에 도달하여 점심을 먹었다.

커다란 버섯 군락지가 눈길을 끌고 흰색은 큰 샐러드 접시 같고 누런 색의 큰 버섯은 나팔 같았다. 

버섯 길을 지나자 다시 폭넓은 강물은 다리가 없어 다시 등산화를 벗고 건넜다. 

강의 하류 부분에는강의 수량이 많은 때를 대비하여 큰 줄이 있었다. 

강물은 차갑지도 않고 물살이 고요하여서 건너기 쉬웠지만 강폭이 넓고 강바닥의 돌이 미끄러웠다.

 오후에는 해가 나와 모처럼 습기 없는 청명한 숲의 공기를 만끽했다. 

땀은 항상 흐르지만 청명한 날씨가 금방 말려주니 기분도 상쾌하고 길도 순조로웠다. 

늪지대가 아닌데 큰 바위가 등산로에  징검다리처럼 있어서 마른 길의 돌다리를 뛰는 것이 어지러웠다. 

이끼 낀 작은 개울에서 물을 정수하여 시원한 물로 더위를 식혔다.

오후에 바위 타기 절벽이 나왔고 긴장감으로 흰색 블래이즈와 흰색 화살표를 따라 안전하게 바위를 올랐다. 

뒤이어 내리막길을 걸어서 그 내리막길 끝에서 큰 강을 만났는데 작은 나무판자 다리가 있어서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 카라배셋강을 정점으로 새로운 산맥이 이어지고 다시 1마일의 오름길을 걸어서 캠핑장의 이정표를 만났다. 

캠핑장 들머리에 있는 개울은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맑고 그 소리도 청아하다. 

저녁이 되니 기온도 내려가고 물이 풍부하지만 너무 추워서 씻을 수 없었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는데도 한기를 느껴 온몸이 오싹하였다. 

한여름의 피서법은 메인 주의 숲에서 머무는 것이고 메인 주의 여름은 짧고 가을 같은 날씨였다.

 

 

* 2천 마일 돌파 -메인 주

8-11 토 맑음 156일째 누적 3,131.2 km ( 2,007.8 mi )

혼스연못 Horns Pond 린투. 이동 20.0 km ( 12.4 mi )

 

아침부터 가파른 오름길의 노면은 바윗길이고 쌀쌀한 아침 기온을 체감하였지만 땀이 났다. 

중턱에서 보이는 밀집한 숲은 내 마음도 풍요롭게 하였다. 

산정상 부위인데 넓은 늪지대는 적당한 물을 머금고 있어 비가 많이 오면 호수가 될 늪지대이다.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만나니 큰 바위 이끼와 나무뿌리로 걷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드디어 2,000 마일 ( 3,220 km ) 지점에 도착하였다.

 누군가 2천 마일을 축하하는 세레모니가 있어서 사진을 찍으며 휴식하였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의 지구력에 흐뭇하고 그만큼 내 몸은 상했다고 생각하니 희비가 겹쳐졌다.

길고 긴 내리막길이 이어지면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 몸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말할 기운조차 없어졌다. 

순탄한 내리막길이 무한정 이어진 길을 지친 몸으로 걸었다. 

많은 하이커들이 나를 지나가고 마주 오던 한 하이커가 도로를 만나는 주차장에서 트레일-매직이 있으니 힘내라고 응원했다.   

산맥이 끝나고 새로운 산맥을 만나기 전의 소방도로에 안내글이 박스 위에 적혀 있고 트레일-매직의 큰 파티로 주차장에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먼저 한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주며 나를 환영하였고 더운 날의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눈 녹듯이 녹으면서 한여름의 열기가 식혀졌다.

 그는 등산로를 고치는 자원봉사자로 아이스크림을 선물하는 트레일-매직이다.

 또 다른 장소에는 온 가족이 여는 트레일-매직이다. 햄버거와 스낵과 음료가 푸짐하였다. 

휴식 후에 음식물 공급을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여야 한다니까 그들은 맥주를 더 산다고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덕분에 배낭을 두고 편하게 음식물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이커들에게 봉사하는 그들과 작별하고 다시 오른 산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는 사슴뿔 호수이다. 

오르는 길도 험하지만 호수를 산 위에서 조망하고 호수까지 도달하는 내리막길도 쉽지 않았다. 

사슴뿔 호수 옆의 쉘터에 도착하니 레인저, 에릭이 있었다. 

에릭은 이 쉘터의 아름다운 등산로와 쉘터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가 알려준 깊은 샘터의 물을 정수하고 텐트를 쳤다. 

캠핑장의 맞은편 언덕에 있는 화장실은 깨끗하였고 그 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도 웅장하였다.

매일 험준한 산행으로 이제는 안전운행에 더 중점을 두었다. 

험준한 길이지만 그 풍광은 산과 호수와 어우러진 최고의 명소를 매일 유람하였다. 

오늘도 3번이나 뱀을 만났고 AT길에서 가장 많이 만난 동물도 바로 뱀이다. 

이제 뱀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자연의 일부로 느껴졌다.

 

 

  * 사슴뿔 호수

 

 

 

 * 2,000마일 지점이자 앞으로 200마일 남은 지점

 

 

 

 

              * 하루에 여러 번 교차하는 거친 길과 평탄한 길

 

* 계곡 목욕탕 -메인 주

8-12 일 맑음 157일째 누적 3,247.7 km ( 2,018.0 mi )

리틀비글로Little Bigelow 린투. 이동 16.4 km ( 10.2 mi )

 

메인 주의 닉네임은 베케이션 랜드 Vacation Land인데 나는 그 닉네임을 호수를 품은 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많은 호수가 있었다.

 산의 중턱에서 보아도 정상에서 보아도 숲은 수많은 호수를 에워싸고 있고 그 호수의 다양한 모습을 정상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호수를 끼고 걷는 등산로에서도 볼 수 있고 쉘터도 대부분 호수를 품고 있었다. 

호수는 청정한 1 급수를 자랑하고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곳은 마치 해변 같아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AT 길에서 이런 비치호수는 이정표에 나오고 지도에도 수영할 수 있다는 안내가 있다. 

한낮의 더운 날 비치호수를 만나면 수영으로 땀을 씻을 수 있어 수영의 피로가 사라진다. 마을로 내려가야만 샤워를 하는데 요즘은 호수에서 멱을 감고 자면 몸이 새털같이 가벼워 꿈잠이 든다.

절벽을 오르고 거친 바위를 밟고 마침내 비글로피크의 정상에 서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정상에서 AT의 북진 방향이 훤히 보이고 뒤돌아 보니 걸어왔던 길도 훤히 보인다. 

북으로 향하며 오른쪽의 산아래에는 비행장과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왼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큰 강에는 수많은 무인도가 도열하여 있고 그 섬과 강 위로 유유히 떠있는 솜사탕 같은 흰구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글로피크의 정상에서 본 풍광은 과히 무릉도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고 신선이 강 위의 구름을 타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이런 풍경 앞에서 하이커들의 발걸음은 자연히 멈추게 하였다. 

정상에서 저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였다. 나도 배낭을 내리고 간식을 먹으며 풍광에 도취한 사이에 흡혈파리가 내 다리를 물었다. 

피가 줄줄 흐르고 그 부분이 쓰라리고 아팠다.

산 아래까지 내려오니 바위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풍성한 블루베리가 지천이다. 

공을 들이지 않고 블루베리 수확을 하는 것이 염치없었는데 자연은 원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허락해 주었다. 

이것이 자연의 포용이고 너그러움이다. 물병에 블루베리를 가득 채워서 넉넉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시간이 꽤 지나고 몸도 지쳐서 쉘터까지 가기도 전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때 쉘터 이정표를 만났다. 

텐트를 치고 물을 공급하러 쉘터 옆으로 난 계곡을 내려가니 터브TUBS라는 이정표가 있다. 

지도책에도 이곳에서 장거리 하이커들이 샤워할 수 있는 계곡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만들고 그 물줄기 아래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욕조 모양의 계곡물이 차가웠다.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계곡탕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옷도 땀으로 젖었으니 옷을 입은 상태로 입수하는 피서법을 즐겼다. 

하이커끼리 차가운 계곡물에 오래 입수하기 시합도 하며 더위를 식힌 후 텐트에 돌아오자 마른 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덜덜 떨렸다. 

쉘터 뒤편에 있는 캠핑장에는 빨랫줄과 울긋불긋 텐트촌이 생겼다.

      

 

               * 비글로 피크 정상

 

 

  * 계곡에 씻을 수 있는 이정표                 

 

 

 

 

* 쉘터 주변을 설명해 주는 레인저, 에릭

 

 

 

 

 * 얼음물 같은 차가운 계곡목욕탕 

 

 

 

 

 

* 쉘터의 호수, 호수의 노을 -메인 주

8-13 월 맑음 158일째 누적 3,276.1 km ( 2,035.7 mi )

피어스연못 Pierce Pond 린투. 이동 28.5 km ( 17.7 mi )

 

오늘 첫 번째로 만난 큰 비치호수는 수영을 하고픈 충동이 생겼지만 시간을 절약하려고 길을 따라 걸으며 호수를 보니 물 위에 검은색 부유물이 많아서 자세히 보니 소금쟁이다. 이렇게 많은 소금쟁이를 본적은 처음이고 소금쟁이는 내가 가까이 가니 물썰매를 타면서 도망갔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호수를 끼고 걷는 순간 갑자기 거대한 체구의 암컷 무스가 나를 보고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무스는 메인 주를 대표하는 동물이고 초식동물로 사람을 헤치지 않는 순한 동물이다.

 그래도 야생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한다.

AT길에서 다양한 동물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고 오늘 그 행운이 나에게 왔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 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얼굴은 말을 닮았으나 몸은 소를 닮았고 식성은 풀을 먹는 초식성이고 그 분비물은 동글동글한 사슴의 분비물과 비슷하나 더 크다.

처음 만날 쉘터가 가까워지는 길은 호수를 끼고 걸었는데 호수에서 보트 소리가 났다. 

나는 저 보트를 타는 여유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잠시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려고 등산로를 이탈하여 쉘터로 들어갔다.

쉘터에 도착하자 큰 플라스틱 박스에 많은 간식과 주스, 과일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방금 놓고 간 흔적으로 박스 위의 메모를 읽었다. 

그는 일주일에 2번씩 배를 타고 이 쉘터로 트레일-매직을 하고 자신의 노모가 직접 만드신 음식이라고 적혀있다. 

혹시라도 동이 난 박스를 보게 되는 하이커에게는 미안하다는 세심한 메모에 그의 고운 마음씨가 엿보였다.

 나는 트레일-매직 음식으로 점심을 고열량으로 섭취하고 순탄한 길을 걸었다. 

오늘밤 머물 쉘터전에 물을 공급하고 쉘터로 향하였다. 

언덕 아래에 위치한 쉘터에 앉으니 호수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쉘터 바로 아래로 야영지가 있고 호수와 인접하여 텐트를 치고 누우니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텐트 뒤의 쉘터에서 하이커들의 담소가 평화스럽다.

호수에서 수영을 하니 자동으로 샤워가 되었고 다른 하이커들도 도착하여 물속으로 풍덩풍덩 입수하였다.

 수영이 끝난 하이커들과 바위 위에 앉아 옷을 말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젊은 친구들은 앞으로의 직업을 찾을 궁리며 공부한 전공 이야기를 했고 중년의 하이커들은 남은 삶의 계획과 건강을 이야기하였다.

길을 걸으며 과거의 추억도 떠 올리고 미래의 계획도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로 젖은 옷과 몸은 시나브로 말랐고 텐트 안에서 보는 호수의 일몰 또한 장관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밖에 나와 호수를 무대로 펼치는 빛의 향연을 감상하였다.

이 쉘터는 호수를 품고 호수는 석양을 품고 나는 이 비경을 가슴으로 품었다.

          

 

 

* 처음으로 무스를 만난 호수

 

 

 

 

           * 텐트와 쉘터에 앉아서 본 호수의 노을

 

 

 

* 푸짐하게 대접받은 트레일-매직 그도 2018년 하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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