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lachian Trail(Welcome Home, Mom)
* 숲의 4월은 더 혹독한 겨울
* AT 첫날 혹한의 밤을 보낸 AT 최남단에 위치한 쉘터
* 눈물, 콧물, 정신줄까지 뺀 혹독한 4월의 숲
* 봄을 고대하며 -노스 캐롤라이나 주
4-1 일 맑음 24일째 누적 338.6 km ( 210.4 mi )
아이스워터스프링스 Icewater Springs쉘터.
이동 5.0 km (3.1 mi)
아침에 발목을 확인하니 부기가 좀 가라앉았지만 걸으면 고통은 여전하다.
설상가상으로 음식물을 가득 채운 오늘은 배낭이 가장 무거운 날로 발목의 통증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폴러베어는 캐나다에 보낼 우편물이 있어 마을에서 하루 더 묵겠다고 하였다.
고지대인 체로키마을의 아침은 쌀쌀하였다.
페인티드와 그의 남자 친구와 다시 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침 8시에 약속한 셔틀에 올랐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허리케인은 연신 담배를 피우니 나는 숨이 막혔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페인티드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플로디다 주에 살고 화가인 그녀는 손녀 이야기, 자신의 그림 주소재인 호랑이 이야기였다.
손주 자랑은 남녀노소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듯하여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핸드폰으로 사진까지 보여 주었고 그녀의 수다는 자동차 속도만큼이나 빨랐다.
계속 듣던 나는 그녀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내 나이는 55세요, 그대의 연세는 몇 살이길래 손녀가 벌써 6살이란 말이오?”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철없이 보여서 나보다 어려 보이기도 하다.
“나는 48세여요 내 남자 친구 허리케인은 52세여요.”
내가 묻지도 않은 허리케인의 나이까지 말해 주었다.
‘맙소사 그대의 딸은 도대체 몇 살에 아이를 낳았으며... ‘
‘페인티드님, 그대는 또 몇 살에 딸을 낳았소?’
이렇게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소탈한 수다가 거침없고 산길 자동차 속에서 멀미가 났다.
공원 도로를 지나는 길에는 들 공작새와 엘크의 무리가 유유히 산보를 하고 있다.
“나는 발목이 아파서 다음 쉘터에서 무조건 쉴 거예요.”.
페인티드 커플은 해질 때까지 이동할 것이라며 차에 내리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무거운 배낭과 아픈 발목은 불편한 마음으로 오름길을 걸었다.
맞은편에서 낯익은 하이커가 걸어온다.
거꾸로 걸어오는 그에게 영문을 물었더니 그는 무릎이 심하게 아팠고 밤새 고민 끝에 포기하고 하산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는 어젯밤 내내 무릎이 어떻게 될 것 같은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결국 새벽에 귀가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순조롭기를 바라며 작별했다.
오늘 처음 만날 아이스 워터 스프링스 셜터로 가는 길은 그레이트 스모키 산 국립공원 ( GSMNP )의 명소에 자리하여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었다.
약 5 km ( 3 mi ) 거리에 엘리베이션 게인 304 m ( 997 ft )로 계속 오름길이고 왼쪽은 절벽이다. 길은 샘물이 흘러서 진흙길로 미끄럽고 자주 막혔다.
일찍 쉘터에 도착하니 일일 등산객들이 많고 그들은 이내 떠났다.
이곳 국립공원 내의 캠핑은 AT 트루 하이커는 무료이지만 일반인은 유료이다.
나는 쉘터 앞의 전망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텐트 속의 겨울 햇살을 즐겼다.
텐트 문을 열고 산아래 전망을 구경하다가 텐트 속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피곤한 몸은 이내 낮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이 깨면 수박, 토마토, 딸기로 과일 파티를 하고 점심은 스테이크로 영양보충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 대로의 숙소에서도 숙면하지 못하여 텐트 속에서 두 번이나 낮잠을 즐겼다..
오후가 되자 60 중반의 와일드플라워를 비롯하여 몇몇 하이커들이 쉘터에 도착하였고 피크닉 테이블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녀는 61세에 일찍 은퇴를 하고 남편이 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 AT여행을 하며 몸의 무리를 피하기 위해 쉘터마다 머문다고 한다.
그리고는 하이커들 모두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다.
“해비 이스트 데이!”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부활절을 축하했다.
“오늘이 부활절이야”
우리 모두 문명의 시간을 잊고 있었다.
산에서의 하이커들은 다른 하이커가 나누어 주는 작은 먹거리나 간식은 그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무겁게 지고 온 그 무게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서 하이커가 주는 간식은 그 사람의 마음을 먹는 것이다.
산에서는 누군가를 떠 올릴 때는 음식을 얻어먹었던 하이커를 더 오래 기억한다.
AT 장거리 하이커 외에 일일 등산객이 많이 지나는 쉘터에 오면 깨끗한 물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사람이 많이 접근하는 곳은 물이 있어도 오염된 경우나 여러 사람이 마셔서 배탈이 난 사람의 신고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 쉘터에도 물공급 이정표 앞에는 물을 정수하되 꼭 5분 이상 끓여 먹으라는 한다.
4월 첫날은 짧게 걸었고 산에서 망중한을 만끽하며 몸 상태가 좋아져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고대하였다.
* 산은 춥고 몸은 더울 때 기운을 주는 샘물
* 순조로운 날 -노스 캐롤라이나 주
4-2 월 맑음 25일째 누적 358.9 km ( 223.0 mi )
트리코너납 Tri-Corner Knob 쉘터. 이동 20.3 km ( 12.6 mi )
밤 날씨는 추웠지만 오랜만의 숙면으로 몸이 가볍다.
모두 추운 탓으로 저마다 국물이 있는 아침식사로 버너 불꽃 소리가 요란하다.
젊은 하이커는 커피 내리는 도구를 챙기고 다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챙기는 남자 하이커들은 여자 하이커들보다 보통 5 kg 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는 커피를 내리다가 쏟아서 스스로에게 몹시 화가 났다.
산행 전에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배뇨 현상이 자주 일어나 화장실을 보는 불편으로 나는 산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마을의 숙소에서는 마셨다.
산행 중 콜라나 소다 종류를 많이 마셔도 역시 갈증이 더 심해진다.
보통 하이커들은 피로 해소와 열량을 높이기 위해 콜라를 선호하고 트레일-매직에서 제공하는 음료수 역시 콜라, 사이다, 맥주이다.
물론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으면 칼로리를 높일 수 있어 좋지만 물공급이 없는 산에서는 갈증으로 자제해야 한다.
산에서 물공 급지를 못 만나면 하이커들에게는 가장 긴장되고 위험하다.
오늘 여정은 몸의 상태가 좋아서 다소 여유롭게 걸었다.
아름다운 국립공원의 붉은 소나무를 감상하며 삼림욕을 즐겼다.
하늘을 찌르듯 곧게 자란 소나무를 바라보면 굳이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키가 크고 늘씬한 매력적인 건강미를 느끼게 하였다.
한마디로 잘생긴 소나무들만 모여 있었다.
우람하게 자란 소나무의 붉은 빛깔은 인디언 원주민의 흙 색깔을 연상하게 하고 빼곡하게 들어선 소나무에 오직 한 사람도 겨우 걸을 수 있는 좁을 숲을 걸었다.
빼곡한 산림지에서 잠시 숲을 빠져 오르면 산아래는 묘한 파란 안개에 싸인 겹겹이 산맥의 띠를 이룬 산자락이 마치 바다를 보는 듯하다.
이곳 일대의 지명을 ‘블루 릿지 마운틴’이라는 지명이 생긴 이유를 확연히 느끼게 하였다.
GSMNP의 풍광과 좋은 공기를 마시며 새삼 나무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씨 한 톨이 떨어져 수백 년의 인고를 겪고 자라서 그들이 주는 좋은 공기는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소나무는 평균 수명을 말하자면 천년 이상을 살고 또 죽어서도 천년이 지나야 소멸한다니 소나무의 기백이 새삼 장대하다.
이곳은 언제나 안개가 가득한 날이 많아서 스모키 Smoky 즉 안개산이라 불리는 이 국립공원의 이름처럼 안개 쌓인 산자락을 걸어서 쉘터에 도착하였다.
오늘 만난 2번째의 쉘터는 산 위에서 샘물이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고 그 옆으로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물공급이 쉬웠다.
유난히 쉘터의 지붕을 낮게 지어 바람과 눈에 견디도록 만들었다.
사람 키보다 낮은 햇살 담은 양철지붕 위에 누군가가 젖은 옷을 말린다.
이 샘물은 설터의 산 위에서 내려와 쉘터 앞을 지나서 산아래로 흘러가고 마를 줄 모르는 샘물 소리가 쉘터에 누워도 정겹게 들린다.
저녁이 되자 날씨는 더 쌀쌀해지고 쉘터와 캠프장의 언덕 주변으로 안개가 다시 피어오른다.
물도 원 없이 마시고 쏟아지는 샘물에 냉족욕을 하였다.
잠을 청하기엔 이른 시간으로 발마사지를 하며 섹션 하이커인 노부부 2 팀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60 초반의 스페인계 여인은 목소리가 20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에 비하여 과체중으로 2층에서 초저녁부터 눕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아내 옆에 누운 마른 체격의미국인 남편이 그녀가 코를 골 때마다 아내를 흔들어 깨운다. 나는 어디에서나 쉽게 잠드는 그녀가 부러웠다.
또 다른 미국인 부부의 남편은 내가 만난 하이커중에 가장 고령자인 87세이다.
그분의 산사랑과 정신력에 우리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이기도 하여 내 시선은 더 자주 그에게 멈추었다.
그의 아내도 과체중이었지만 잠이 없는 분으로 쉘터 밖에서 자주 흡연을 즐기는 여인이다.
해가 질 무렵 산 중턱에 텐트를 친 프린세스와 그녀의 친구가 쉘터에 들어와 젊은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였다.
그녀는 며칠 만에 나를 보자 발목은 좀 어떠나고 묻는 정 많고 귀여운 아가씨이다.
* 봄을 알리는 에러지 야생화
* 한여름 같은 봄 날씨 -테네시 주
4-3 화 덥고 맑음 26일째 누적 382.7 km ( 237.8 mi )
데벤포터 갭 Davenport Gap 쉘터. 이동 23.8 km ( 14.8 mi )
어제에 이어 화창한 날씨가 예측되고 하이커들의 아침은 모두 여정길 채비로 바삐 움직인다.
2시간을 오르니 울창한 소나무길의 좁은 오솔길은 공기가 쾌적하다.
나는 섹션 하이커 두 부부를 앞질러 걸었고 그들은 다음 쉘터가 오늘의 목적지라고 하였다.
낮에는 기온이 점점 오르니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길옆으로 작고 앙징스러운 야생화가 언덕 전체를 뒤덮었다.
흰색의 야생꽃은 마치 며칠 전의 눈산 같은 착각이 들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눈 같은 야생화는 봄바람에 춤추며 일렁인다.
춥고 힘든 눈산을 걸었기 때문에 상반된 오늘의 달콤한 꽃길이 더 사랑스럽다.
산 중턱에서 AT 초반에 만났던 해리슨을 만났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났다.
멋진 소나무 숲 언덕에서 원시림을 느끼며 스모키 산 국립공원의 울창한 소나무 밀림지대를 오늘로 끝나서 마지막 소나무 숲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리막길을 걸어 고도가 내려가자 GSMNP의 진풍경인 소나무는 사라지고 활엽수 숲이 몹시 더웠다.
내일이면 국립공원의 북쪽 끝자락에 당도하고 GSMNP 지역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오늘 만난 첫 쉘터를 들리지 않고 바로 지나자 길은 검고 날카로운 돌이 깔린 내리막길로 바뀌었다.
가장 낮은 분지를 도달 하자 땀을 식히는 젊은 하이커들이 삼삼오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화창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오름길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새로운 산맥을 만나 다시 힘겨운 오름길을 걸을 때 앞서간 해리슨이 나를 뒤따라오고 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중간에 쉬었기 때문에 좀 전에 만난 쉘터를 지났고 그는 쉘터에 들러서 물을 공급받고 점심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는 다음 쉘터에서 쉰다니까 해리슨은 더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커들마다 더워서 흐르는 땀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모처럼의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어 즐거웠다.
오늘 등산로는 일일 등산객이 자주 보였고 그렇게 오름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할 때쯤 아름다운 미모의 젊은 레인저 아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트루 하이커 시죠? 퍼밋은 가지고 계지시요?”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네.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보여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더운 날의 앙상한 나뭇가지로 내리쬐는 태양열을 조금이라도 피해 주고 싶었던 그녀의 배려이고 나에 대한 그녀의 신뢰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길조심 하라는 당부인사로 헤어지고 얼마를 걸어서 이틀 전에 헤어진 허리케인을 만났다.
“페인티드는 어디 있어요?”
“그녀는 앞서가고 나는 무릎이 아파서 천천히 걷는 중이죠.”
“무릎이 아파서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어요.”
그는 담배를 연신 피우며 쉬고 있었다.
미서부에서 살다 온 나는 산에서 담배 피우는 미 동부의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미서부보다 미 동부 사람들이 훨씬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 같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의 남부지역은 산에서 담배를 피우다 레인저를 만나면 벌금 티켓을 받는다.
비가 없고 고온 건조한 남가주의 산은 담배가 아니어도 더운 날의 강풍에 쉽게 자연 산불이 나기 때문에 산에서는 절대 금연이다.
물론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내리는 이곳 동부의 하이커들은 의외로 산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고 서로 나눠 피운다.
마리화나 잎담배는 남녀노소 한 번씩 돌려가며 피우는 것은 내 정서로는 불편하였다.
나와 친한 하이커는 나에게도 권했지만 아마도 내가 피우면 이 쉘터에서 쓰러질 거라고 했더니 모두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는 하이커들듲 많이 보았지만 어떤 쉘터나 등산로에서 담배꽁초가 떨어진 것을 본 적은 없다.
산에서는 쓰레기를 스스로 가지고 마을까지 가는 불문율은 정말 잘 지켜졌다.
아예 길에 뭘 버리는 하이커가 없다. 미국에 살면서 일반 도로 바닥에도 담배꽁초가 없다. 법이 최고의 힘으로 군림하는 법의 나라에 쓰레기 안 버리기의 작은 법규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본받을 만하다.
흡연자 하이커들은 비흡연자 하이커들에게 쉘터에서 담배 피우기 전에 먼저 묻는 사람도 있다.
“내가 담배 피우면 너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겠느냐?”
또 비흡연자는 한결같이 속내를 숨기고 대답한다.
“아니다 피워라.”
백발백중 그렇게 말한다.
미국 사람이 어떻게 보면 그 사람 앞에서는 좋은 말만 하고 그가 떠난 뒤에는 그의 흉을 보는 데는 선수들이다.
물론 쉘터에서 꼴불견인 하이커를 그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문화도 재미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서로 간의 분쟁이 없다. 어쩌면 저마다 좋아하는 취향을 존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점은 없는 자리에서 분출하여 흉을 많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화창한 봄날이지만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깨와 허리는 배낭의 무게로 압박되어 힘겨울 때 페인티드가 등산로 한쪽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었다.
나는 더운날씨더운 날씨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쉘터를 만나면 빨리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녀는 깡마르고 큰 키로 체격으로 여유롭게 산행을 즐겼다.
허리케인과 그녀는 쉘터를 더 지나서 텐트를 칠 것이라고 했다.
데벤포더 갭 쉘터에는 산의 지형상 캠핑장이 없어서 많은 하이커들은 이 쉘터를 지나서 텐트를 많이 쳤다.
산아래로 한참을 걷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데벤 포터 갭 쉘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는 울창한 소나무 밀림을 지나고 점심에는 꽃길을 지나고 늦은 오후가 되자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의 활엽수 산길을 걸었다.
하루에도 서로 다른 풍경을 걷는 것도 이채롭다.
쉘터에는 프린세스 일행이 도착하여 독서 중이었다.
나는 여장을 풀고 쉘터 아래의 물 공급지에서 물을 정수하니 한 하이커가 무릎이 얼마나 아팠으면 트레일 네임이 Knee pain이라고 스스로 지었다.
우리는 물을 정수하면서 아픈 그의 무릎과 나의 발목에 대하여 서로 위로하였다.
물을 정수하고 쉘터를 향하여 가파른 언덕길 주변에는 취나물이 지천이다.
나는 잎줄기 하나를 따서 그 향을 맡으니 그 향이야말로 동양사람들이 좋아하는 산나물이다.
잎의 뒷면은 보라색 빛으로 겨울 추위를 이기고 자란표시가 역력하다.
취나물을 보니 하루 정도는 쉘터에서 쉬면서 산나물을 캐고 싶었다.
다정했던 고향 친구와 옛이야기 나누며 취나물을 따고 그것을 데치고 볶아서 친구와 취나물 봄소풍 하면서 이 쉘터에서 제로데이를 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였다.
AT의 규칙 중에 어떤 풀도 나무도 채집하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고 한다.
미국의 자연사랑에는 자연을 보호하되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더 우선이다.
자연을 보호하고 유지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해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확실한 것은 따 먹고 또 채집하는 규정을 허락한다.
단지 규제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 식물을 먹고 생명의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확실히 아는 식물은 맛보고 서로 관찰하기도 한다.
또 AT길에서 산딸기나 블루베리가 많은 곳은 비닐봉지를 준비하라고 AT 가이드북에도 명시하고 있다.
사람에게 유용하나 무작위 채취를 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배울 점이다.
미국이 자연보호에 대한 열정에 비해 미 중부나 동부의 등산로를 걸으면 아이러니한 것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살아있는 나무에 이정표를 못으로 박고 등산로 표시로 직사각형의 블래이즈들이 살아있는 나무에 페이트 칠해 있다.
자연을 보호하되 인간의 유익이 우선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자연도 인간에게 유익이 된다면 해칠 수 있지만 최대한 자연을 그대로 살리자는 뜻도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는 알면 알수록 치밀하고 미국의 다양한 자연도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오늘 머무는 쉘터는 특이하게도 쉘터 입구가 뚫려 있지 않고 철망과 철문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낮에는 열어두어 번거로움이 없지만 밤에 화장실을 가는 하이커들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빗장을 여는 소리는 잠자는 하이커들을 깨우고 어두운 밤에 잘 잠겨졌는지 확인하려고 해드램프를 켜야 한다.
한 하이커는 사람이 우리에 갇히고 동물들이 사람을 구경 오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잠자는 시간에 철문을 닫고 자니 음식물이나 배낭을 모두 쉘터 안의 처마에 걸 수 있어서 곰이나 동물에 대한 걱정 없이 잘 수 있다.
그래서인지 쉘터 주변에는 음식물을 보관하는 베어 탱크가 없었다.
사람이 우리에 갇히든 곰이 자연 속을 활보하든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동물의 영역인 자연을 침범한 것은 인간이니 자연의 주인인 동물에게 폐가 된다면 하이커들은 기꺼이 우리에 갇혀서 자는 것도 즐거워하였다.
오늘 밤은 낮 기온만큼이나 고온다습하고 더웠다.
쉘터에서 이렇게 더웠던 밤은 처음이었다. 보온처리가 된 침낭 속에서 잘 수 없을 정도도 한여름의 열대야처럼 무더웠다.
어젯밤의 쉘터는 고도가 높은 고산의 추위로 웅크리고 잤고 오늘 밤은 고도가 낮은 데다 밤더위로 잠을 설치게 하였다.
쉘터 안이 더워지자 함께 누운 사람들의 체온으로 한증막이 되어 잠을 설쳤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무더위는 사라지고 침낭 지퍼를 다시 올리자 양철지붕을 두르리는 빗소리를 자장가로 살포시 잠이 들렸다.
* 때와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비경
* 재회 -노스 캐롤라이나 주
4-4 수 비 흐림 27일째 누적 399.6 km ( 248.3 mi )
그라운드하그크릭Groundhog Creek쉘터. 이동 16.8 km (10.5 mi )
새벽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여 계속 비가 내린다.
어제는 아픈 발목으로는 무리하게 걸어서 오늘은 다음 쉘터까지 18 km ( 11 mi ) 짧게 일정을 계획하였다.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평소보다 1시간 늦은 7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내리막길 중반부에 들어서자 멋진 폭포가 반기고 산아래에는 텐트들이 옹기종기 비를 맞으며 자고 있다.
산길에는 은방울꽃, 둥굴레 꽃, 취나물, 화살 나뭇잎... 그 외에도 다양한 들풀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었다.
하이커들은 비옷을 입고 걸으면 땀이 차면서 번거로운 하나의 걸림돌이다.
나는 비가 그치고 날이 훤해져서 축축한 길 위에서 배낭을 내리고 비옷을 벗고 다시 걸었다.
쉘터가 위치한 산맥이 끝나고 GSMNP의 북쪽 마지막 경계선의 이정표를 만났다.
남쪽으로 향하는 소보 하이커는 이 지점에서 스모키 산 국립공원을 처음 만나서 허가증을 넣는 통이 보였다.
또 북쪽으로 향하는 노보 하이커들은 멋진 스모키 산을 며칠간 걸어서 이제 GSMNP 구간을 벗어나는 지점이다.
스모키 산 국립공원과 작별하고 걸으니 바로 산맥이 끝나고 다음 산맥을 찾아가는 연결지점에 4갈래의 잘 닦여진 소방도로에서 길이 혼란스럽다.
AT를 건 지 한 달이 되어가니 이제 헷갈리는 길을 만나도 방향을 대충 보면 느낌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남으로 가는 길은 아니고 강줄기 아래로 걷는 길도 아니고 내가 왔던 길은 결코 아니고 그럼 저 다리 위로 가야 한다.
이런 경험에 의한 상상으로 길 찾기를 유추하는 동안 뒤늦게 출발한 젊은 커플도 이 길목에서 잠시 헷갈려서 그들은 핸드폰 앱을 확인하였다.
나는 다리를 지나자마자 선명한 흰색 블레이즈를 길바닥에 보이자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흰색 블레이즈가 있어요.”
미국의 주와 주를 지나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중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많은데 그중에 대표적인 길이 I-40번 도로이다.
이 도로의 굴다리 아래로 걸으니 아아!! 나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2년 전에 자동차로 미서부에서 미 동부로 횡단하며 이 도로를 지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근대시대에 미 중부의 시카고에서 미서부의 산타모니카까지 금광을 찾아서 보다 나은 삶을 찾고자 달구지를 끌고 이주하였던 66번 도로는 미국에서 ‘엄마의 길’이라는 역사적인 도로이다.
영화 ‘분노의 포도’는 살아나기 위한 미국의 역동기를 66번 도로를 무대로 영화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66번의 구불구불한 도로는 동서로 뻗은 이 I-40 도로가 생기면서 추억의 길이 되었다.
거대한 대륙의 땅 그 속의 방대한 숲 속의 대자연을 두 발로 걸어보는 도보여행길에 오른 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자동차의 굉음을 뒤로하고 산으로 들어서자 개울을 지나 작은 폭포를 만나고 등산로 위에는 또 다른 도보여행자인 달팽이 행렬이 보였다.
나무마다 빗물을 머금은 새싹과 인사하고 고목에 핀 봄꽃은 진한 분홍색이 겨울 추위를 이겨낸 핏 멍 같지만 화사하게 보였다.
화장실을 쓰기 위해 바위 위에 배낭을 풀고 등산로를 벗어나 혹여 지나는 하이커와 눈을 마주칠까 봐 불편한 마음이지만 그럴 걱정은 없다.
하이커의 배낭이 등산로 위에 있으면 하이커들은 어떤 곳도 눈길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용변을 보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불편할까 봐 배려하는 것이 하이커끼리의 배려이다. 그래서 동물은 무서워도 하이커를 만나면 반갑다.
다시 내리막길을 따라 걸으니 길 위에 남자 하이커의 배낭이 보인다.
나도 앞만 보고 지나는데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하이커는 쉬고 있으며 나를 보며 반가워한다. 익숙한 그의 목소리는 바로 버스였다.
“There she is!”
하이커들을 여러 번 만나고 헤어지지만 사람마다 취향과 성격이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하다.
성품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긴 시간의 여정길에서 각별히 챙겨주며 속사정 이야기도 하고 또 들어주면서 산 친구가 되고 인생의 절친한 선후배가 된다.
나에게 법스도 그런 친구 중의 한 사람이다.
“그 아픈 발목으로 여기까지 오다니 기특하네요.”
“저도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그는 진심으로 나와의 재회를 반겼다..
“약까지 주셨는데 답례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고 고마워요.”
“혼자 걸으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는데 오늘은 편하게 걷겠어요.”
나는 혼자 걷는 두려움의 속내를 그에게 말했다.
“트레일에서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무서울 일도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는 인자하게 나를 위로하였다.
스는 어제 트레일-매직을 만나서 샌드위치 캔맥주를 마신 이야기를 하였다.
함께 내리막길을 걷고 작은 개울을 만나고 마침내 쉘터 이정표를 만났다. 우리는 쉘터 뒤편의 평평한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개울로 가서 물을 길어 올 건데 법스 당신 물도 길러 줄까요?”
그는 내 말에 흔쾌히 그의 물주머니를 주었다.
계곡물이 작지만 물살이 바위 사이로 빠르게 흐르고 물소리 또한 경쾌하다.
흘린 땀을 씻어내고 병물을 받아서 한쪽 언덕에서 비누 없이 머리를 감았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머리를 적시니 소름이 돋았다.
나무 아래에서 춥지만 물수건으로 몸도 닦고 각반과 손수건을 씻고 가득 채운 물을 들고 돌아오니 쉘터 주변은 젊은이들이 도착하여 시끌벅적하였다.
법스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라며 통나무 의자를 나의 텐트 옆으로 옮겨 주었다.
나는 오랜만에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통나무에 걸터앉아 일기를 썼다.
나는 그가 준 약으로 며칠을 잘 걸을 수 있었다.
그 답례로 터키 샌드위치를 먹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흔쾌히 먹겠다며 다만 간식으로 먹을 테니 조금만 달라고 하였다. 그는 내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것을 알고 다음 마을까지 여분이 있다며 충전기를 주었다. 이 쉘터는 통신상태가 좋아서 그의 덕분에 산속에서 딸과 통화할 수 있었다.
법스는 유난히 아내와 자주 통화하여서 참으로 자상한 남편이라 생각하였다.
나는 그에게 내일 날씨 상황을 물었더니 인터넷 상태가 좋지 않다며 또 아내에게 문자 하였고 그의 아내는 내일 우리가 걸을 위치를 검색하여 날씨정보를 문자로 보내 주었다.
찰떡궁합 부부금슬이 아름다웠다.
오늘의 여정은 아침에 비가 왔지만 이내 그치고 오후에는 햇빛이 없는 구름으로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으며 일찍 쉘터에 도착하여서 순조로운 하루가 되었다.
쉘터는 평평한 내리막길 평지로 텐트 치기 좋은 환경이고 텐트 자리도 많았고 계곡의 물도 맑아서 쉘터 상황도 좋았다.
* 법스님이 옮겨 준 통나무와 모하비 텐트
* 꽃길을 걷다 -테네시 주
4-5 목 화창한 봄날 28일째 누적 402.7 km ( 261.4 mi )
월넛산 Walnut Mountain 쉘터. 이동 21.1 km ( 13.1 mi )
어젯밤에는 바람이 없었지만 기온은 차가웠다.
바람 없는 밤의 다음날은 따뜻하거나 날씨가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산이고 매일 새로운 등산로가 있고 숲 속에서 항상 밤을 맞는다.
오늘도 걸을 수 있는 숲이 있고 산이 기다리고 있어 기대된다.
어제 버스가 오른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온다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파스를 붙여주려고 그의 텐트를 노크하였다.
“어느 쪽 무릎이 아파요””
그가 긴바지를 걷어 올리자 무릎에 이미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는 걸 보니 그는 여러 날부터 무릎이 아팠던 모양이다.
그는 약을 먹어도 호전 기미가 없다고 한다. 나는 파스가 떨어지지 않도록 종이테이프를 함께 붙여 주고 먼저 떠나자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오늘은 전형적인 봄 날씨이고 길은 순조로웠다.
목가적인 통나무 다리와 돌 징검다리를 건너고 산속 계곡물은 주변의 식물을 잘 자라게 해 주었다.
작은 야생화 꽃이 여기저기 땅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고 때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나무터널을 지나고 그 나무터널은 바람을 막아주고 빛을 가려주고 가끔은 비도 피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터널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길 같아서 홀로 걸으면 호젓한 길이고 하이커와 걸으면 정겨운 길이다.
다시 산의 형세가 다른 산맥을 만나자 이제는 지평선이 보이는 방대한 초원지대가 펼쳐진 곳을 만났다.
오랜만에 따사로운 봄햇살을 만끽하는 하이커들은 잔디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였다.
법스는 나보다 더 빨리 걸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나를 따라오지 못하였다.
초원 위의 바람이 햇살보다 쌀쌀하여 나는 사진만 찍고 쉬지 않고 걸었다.
산맥이 끊어지면서 노스 캐롤라이나 주가 끝나고 다시 테네시 주가 나오는 등산로 입구에서 나는 잠시 휴식을 가졌다.
잘 포장된 소방도로의 차량 속에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테네시 주에도 산불이 나 있어서 등산로 양쪽으로 막 새싹을 피운 나무들은 불에 타서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그 화기가 코를 찌른다.
아마도 산불이 일어난 지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다. 불에 그을린 대지에 비가 내려서 새순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산불 난 등산로의 왼쪽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흐르고 하이커들이 물을 공급받느라 길이 나있다.
나도 법스를 기다릴 겸 계곡의 바위에 앉아 물을 정수하고 땀을 닦으니 더위에 지친 몸은 기운이 났다.
이 느낌으로 힘을 내어 다시 오름길을 따라 걸으니 마주 오는 한 사람은 멀리서부터 불편한 마음이 느껴진다.
배낭도 없이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온다.
하이킹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보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등산복이 아닌 허름하고 무거운 가죽재킷에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나를 지나갔다.
서로 반대방향의 길이니 단 몇 초 만의 긴장이었다.
산길, 계곡길, 나무터널, 초원지대, 그리고 불탄 길, 불안감을 주는 아저씨까지 다시 초원을 만나 산 중턱을 힘겹게 오르니 캠프장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쉘터가 보였다.
벌써 쉘터 아래의 캠핑장에는 그룹 하이커들이 텐트를 치느라 바빴다.
이 쉘터는 물공급처가 언덕 아래의 길고도 깊은 내리막길에 있고 물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계곡에서 물을 가득 받을걸 후회되었다.
내일부터는 쉘터 주변의 상황을 더 꼼꼼히 읽어야겠다.
쉘터에서 물 공급지가 멀거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갈 때는 또 다른 산행이 되어서 아픈 발목은 더 심한 통증을 느꼈다.
물을 받으려니 미세한 모래가 물과 함께 들어와 이런 물을 정수하면 필터가 치명적이다. 다음에 정수할 물이 아무리 1급 수라도 이미 필터가 막혀서 정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급기야 필터를 새로 구입하여야 한다.
내 옆자리에서 텐트를 치는 젊은이들은 내일이면 핫 스프링 마을의 호스텔에서 샤워할 수 있다고 벌써 신이 났다.
나도 아픈 발목을 충분히 쉬려면 오전에 호스텔에 도착하여야 그날 충분히 쉴 수 있기 때문에 이틀 후에나 아침 일찍 호스텔에서 숙박할 계획이다.
법스는 내가 쉘터에 도착하고 1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도착하였다.
그는 초원지에서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고 하였다.
오늘 밤도 바람이 없어서 내일의 날씨도 역시 좋을 예감이다.
쉘터 앞 모닥불에는 젊은이들의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들린다.
나는 텐트에서 자도 여명 전에 어김없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숲에 자명종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 4시 50분부터 부지런한 새가 노래하기 시작하여 새벽 5시에는 숲 속의 모든 새들이 앞다투어 지저귄다.
숲 속의 정확한 자명종 시계는 바로 새들의 노랫소리이다.
* 자연으로 생긴 나무 터널의 운치 있는 등산로
* 모든 삶에는 역경이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
4-6 금 맑고 화창함 29일째 누적 436.6 km ( 271.3 mi )
디어파크산 Deer Park Mountain쉘터. 이동 15.9 km ( 9.9 mi )
오늘은 법스가 먼저 출발했는데 그는 어제의 물공급지가 좋지 않아서 등산로에서 샘물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앞서 걸었는데 뒤에 법스가 따라오는 날은 그가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였다.
아침 일찍 걸으면 산천의 고요를 즐길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난 새들이 쪽잠에 들고 바람 없는 아침의 산은 고요함의 결정체였다.
그런데 왠지 내 뒤에서 나를 당기는 듯이 기분이 묘하다.
뒤에는 법스가 있는데 불편한 마음에 뒤돌아 보니 어제 만났던 그 이상한 할아버지가 또 보였다.
똑같은 옷차림으로 똑같은 비닐봉지를 들고 한 손에는 커피 컵을 들로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를 빨리 보내기 위해서 나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따라잡지 못하여 다시 뒤돌아 보니 그는 길에 앉아 쉬고 있다.
나는 그를 먼저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걷기를 멈추고 바위 위에 자란 이끼류의 사진을 찍으며 발길을 멈추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하여 내 곁으로 와서 질문을 하며 내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오늘 어디까지 가요?”
“이 길로 몇 마일 가면 마을이 나와요?”
현지인 같은데 오히려 나에게 길을 물었고 산속에서 이런 차림새도 불편하였다.
홈리스 같기도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뒤따라 오는 친구가 알고 나는 그를 기다려요.”
그는 더 이상 질문 없이 걸어갔고 나는 법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법스도 이상한 사람 만났느냐고 물으면서 아무 말없이 그를 지나쳤다고 했다.
법스가 도착하였고 그도 그 할아버지가 이상하였다고 하였다.
또 어찌 보면 할아버지는 순수하게 아침 산책하는데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일 수도 있다고 했더니 빕스는 산에서는 어떤 것도 안전이 최고이니 오늘은 쉬어가며 함께 걷자고 했다.
그런데 점점 내 발목 통증이 심해지면서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깊은 내리막길이 많았다.
마을이 나오는 전방의 등산로는 한없이 내려가는데 오늘따라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발목 통증으로 나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질렀다.
법스는 내 걸음이 점점 느리자 내 뒤에서 걸으며 천천히 걷는 망중한도 좋다고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뒤에서 걸으면 내 걸음 속도에 맞출 수 있어 항상 함께 걸을 수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면 뒤에서 걷는 사람은 지루할 수 있다. 그는 아픈 나를 기꺼이 배려해 주었다.
이른 봄 나무에서 피는 꽃은 대부분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나온다.
그중의 하나가 생강나무이다. 노란 꽃이 추워서 옹기종기 붙어서 피었다.
“이 나무가 생강나무랍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꽃이 예쁜데 우찌 이름이 생강나무란 말이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나무 잔가지를 잘라서 그 냄새를 맡으면 생강 냄새가 납니다.”
그는 나의 설명에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고 생강 냄새에 신기해하였다.
“무작정 걷기만 했는데 이제 나무도 꽃도 더 세심히 관찰해야겠어요”
생강 꽃은 그 색깔이 연노랑도 아니고 샛노랑도 아니다 꽃이 추위에 멍들다 피어서 그런지 겨자색이다. 적당히 탁한 노란색이 더 고풍스럽게 보이는 꽃이다.
“꽃 색깔이 머스터드색 같지 않아요?”
“저는 머스터드 색깔을 좋아해요.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지요.”
“자연의 색이라 그렇겠지요.”
또 걸어가다 싱싱하게 자란 달래를 보았다.
“이것은 야생 양파라고 하는데 식용식물인데 혹시 아세요?”
나는 다시 땅에 올라온 달래 한 포기를 뽑아서 볼록하게 자란 뿌리 쪽으로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니까 그는 양파 냄새가 난다며 웃었다.
봄날에 이 식물로 된장찌개를 끓여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고 하니까 그는 한국의 정서가 좋다고 하였다.
“서양에서는 옛날에 이 볼록한 뿌리 부분으로 비누를 만들었데요.”
“그 뿌리 부분을 으깨 보면 실제로 미끌미끌하거든요.”
“모하비님은 식물 박사네요. 허허허...”
양지바른 경사면에 봄의 전령사 에델바이스 꽃도 앞다투어 피어 있었다.
그는 이것이 에델바이스 꽃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며 영화 ‘사운드 오버 뮤직’을 생각하며 에델바이스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 날씨는 봄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버스와 속도를 같이 하다 보니 AT를 하게 된 동기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의 삶의 이야기보따리도 풀었다.
그는 미시간 주에 살고 나이 60세이다. 머리가 백발인 미국인 남자들도 걷는 속도가 빨라서 나이를 물으면 62세 이후이다.
요즘 60 중반의 남성은 노년이 아니라 청년 같은 힘자랑을 하며 모두가 잘 걷는 청년 어르신이다.
그는 과체중도 아니고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데 나의 정상 걸음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걷는 것도 이해가지 않았다.
그는 58세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그 이후 직장을 포기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의 삶에서 이런 병을 만나자 혼란스러운 충격이 찾아온 것이었다.
여러 번의 대수술 끝에 그는 몸이 회복되었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많고 다행히 그는 인공 심장박동기를 달지 않고 병을 이겨낸 것으로 감사한다고 하였다.
지금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정기검사를 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한다는 그의 불운을 듣고 나는 너무 놀랐다.
아직 더 일해야 하는 나이에 이런 불운을 그는 감당해 냈고 어느 날 스스로 AT를 하면서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아내와 의사는 반대하였지만 그는 3개월의 약봉지를 배낭에 넣고 60세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는 환자의 몸으로 AT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걸었다.
그는 서비스 지역에서는 언제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무탈한 그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갑작스러운 병마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불운이다.
그는 함께 점심을 먹으며 배낭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두툼한 약봉지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뒤따라온 두 하이커도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그때 꺼낸 약봉지를 법스가 배낭에 넣자 무엇이냐고 젊은 하이커들이 물었다.
“스페셜 캔디!”
내가 이렇게 대답했더니 법스는 웃었다.
그의 순탄한 삶에서 찾아온 건강의 적신호는 큰 역경이었다.
또 그것을 이겨내고 숲 속으로 왔다는 말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왜 그가 아내와 매일 통화를 했는지',
'왜 그는 그렇게 천천히 걸었는지',
어제는 산길에서 그를 기다려 주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내 발목이 아픈 오늘은 그가 내 속도에 맞추려고 내 뒤에서 걸어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 쉘터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내가 너무 느리게 걸어서 10마일의 거리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는 3마일 더 전진하여 마을의 숙소에 가서 햄버거와 맥주를 마시는 여유를 가지며 쉬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발목 통증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서 오늘 쉘터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마을 숙소에서 온종일 쉴 계획으로 서로 헤어졌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역경 없는 삶이 없다.
모든 삶에는 역경이 있다.
그러나 그 역경 뒤에 행복 또한 있다. 인생은 역경이 있어서 저마다의 라이프 스토리가 있고 그래서 삶은 힘들어서 더 숭고하고 봄날 같은 행복이 있어 더 아름답다.
나는 그의 이야기로 샘물 같은 눈물이 흘렀다. 모든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와서 눈물이 절로 났다.
계곡물을 실컷 마시니 마음이 정화되었다.
디어 파크산 쉘터는 그 규모가 아주 작아서 5명이 잘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숙면을 위해 텐트를 치기로 했다. 산행이 끝나고 텐트를 칠 때 하루 중 가장 마음이 푸근한 시간이다.
텐트 속의 나만의 공간에 지친 몸으로 누울 때 매일 새로운 집을 지은 뿌듯함이 있다. 작은 벌레나 쥐가 들어올 염려가 없어 마음도 편하다.
산속의 날씨는 밤이면 더 변화무상하고 비도 역시 밤에 잘 온다. 텐트를 연신 노크하는 빗소리로 잠이 깨어 버렸다.
내일 일정을 고심하면서 좁은 텐트 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 삶의 책장도 여기저기 펼쳐 보았다.
* 눈물이 날 정도로 춥지만 쉘터에의 달콤한 휴식
* 봄 뒤의 겨울 -테네시 주
4-7 토 비 안개 30일째 누적 459.5 km ( 285.5 mi )
스프링산 Spring Mountain 쉘터. 이동 23.3 km ( 14.2 mi )
산에서는 하루에도 겨울 봄 여름을 수시로 넘나드는 날씨 변화에 하이커들은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은 수시로 포기하고픈 마음의 갈등을 안고 걷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마을길을 가는 내내 내리막길이고 빗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안개비로 젖은 바위 위의 옥색 이끼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AT를 상징하는 로고 중에서 블래이즈는 흰색 직사각형 세로 모양이면 그 바탕색은 옥색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아팔 래치 안 산맥 전체를 휘감고 있는 대표 이끼 색깔이 옥색이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에도 살아있는 나무에도 바위에도 화사한 옥색깔의 이끼가 덮여 있었다.
어릴 때 먹은 쑥버무리라는 떡이 있는데 이른 봄에 뜯은 쑥을 삶아 갈아서 쌀가루와 섞어 쪄 먹는 간식인데 바로 쑥의 짙은 청록색과 흰색의 쌀가루를 합치면 옥색이 된다.
배가 고파서인가 이끼 색깔이 딱 내가 좋아하는 그 쑥떡의 색깔이다.
쑥을 많이 넣고 길게 절편처럼 만든 쑥절편에 고소한 콩가루를 입히면 향긋한 쑥떡이 된다.
떡 중에 모하비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 바로 쑥떡이다.
3,4월에 나오는 어린 쑥을 캐서 딱 이맘때쯤에 먹는 떡이다.
대구의 향토식품인 이 쑥떡을 내 삶에서 언제 또 먹어 볼 수 있을까...
배가 고파서 바위에 붙은 이끼는 모두 쑥떡으로 보인다.
마을로 내려가면 쑥떡 비슷한 떡도 없어 굶주린 나는 빵을 흡입할 것이다.
어젯밤에 잤던 쉘터는 테네시 주이고 오늘 아침에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핫스프링스 마을 도착한 후에 새로운 산맥을 오르면 테네시 주의 스프링산 쉘터이다.
5일 동안 매일 주가 변경되는 구간을 걸었다.
핫스프링스 마을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단장된 AT를 통과하는 타운이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산 아래 호스텔을 방문하니 비 때문에 하루씩 더 묵는 하이커들로 빈 침대가 없었다.
땀과 비로 젖은 몸은 한기가 들어서 호스텔의 따뜻한 로비에 들어서니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미지의 온기는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다.
호스텔 카운터 아저씨는 침대는 없고 캠핑장의 텐트 자리가 남았으니 나에게 침대보다 절반 가격인 텐트를 치고 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을 본 로비에 있던 한 하이커가 말하였다.
“나는 곧 떠날 거니까 내 침대를 주세요?”
“죄송합니다. 이미 예약이 된 침대이어서요.”
아저씨가 작게 말했다.
나는 호스텔의 투숙을 잘 예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발목이 상태에 따라서 하루 일정을 예측하기 어려워 심하게 아픈 날은 만나는 첫 쉘터에서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로 실외의 밤기온이 내려가서 호스텔에서 텐트를 치는 것보다 11마일 거리의 다음 쉘터에서 자려고 생각하고 계속 걷기로 했다.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공산식품을 구입하고 비 오는 처마 밑에서 배낭에 넣기 좋도록 포장을 벗겼다.
가게로 들어가던 한 미국인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격려해 주셨다.
“배낭이 당신보다 더 크네요.”
“힘내요!”
“감사합니다.”
나는 포장을 정리하면서 쑥떡을 그리워하며 시나몬빵 한팩을 단숨에 먹었다.
아니 빵을 마시듯이 먹었으니 상거지가 따로 없다.
이제는 가게 앞에서도 잘 먹는 나를 발견하고 조금 서글펐지만 모든 장거리 하이커들이 하는 행동이다.
하이커들의 수다 중 누가 쉘터에서 그랬다.
“거지 중의 상거지이죠. 하지만 주면 먹지만 결코 구걸하지는 않아요”
거지 중의 명품 거지 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배낭, 텐트, 등산화, 옷이며 가지고 있는 아웃도어 용품들은 모두 합산하면 최소한 2백만 원 (2,000불 ) 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그러니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이다.
오늘은 일기가 불안정하여 산에서는 비가 내릴 확률이 높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음 쉘터까지의 등산로에는 캠핑장이 없다.
또 흐린 날의 숲은 빨리 어두워져서 서둘러 쉘터까지 가야 한다. 점심을 시나몬빵과 프로틴 바로평소보다 2배의 양을 먹었으니 다시 빗속을 걸었지만 발목은 여전히 아팠다.
마을을 지나는 곳마다 하이커들이 여기저기에 보였고 나는 마을을 가로지르면서 딸에게 통화를 하였지만 전화상태가 좋지 않아 안부만 전하고 끊었다.
비를 맞으며 걸었지만 큰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큰 다리를 지나서 다시 새로운 산맥으로 접어들었다.
마을은 산보다 지대가 낮아서 마을로부터의 산길은 항상 급경사의 오름길이다.
마을에서 시작되는 오름길은 음식물로 채워진 무거운 배낭과의 투혼이 있어야 새로운 산을 오를 수 있다. 산 위로 오르니 지나온 강과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프랜치 브로드 강은 French Broad River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핫스프링스 마을에 위치한 아름다운 강이다.
물이 풍족한 핫스프링스 마을은 지형적으로도 풍요로운 지역이다.
산으로 오를수록 바람 없는 차가운 안개비가 조용히 내려서 내 몸을 시나브로 적셨다.
몸이 더 젖기 전에 쉘터에 도착해야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고도가 높아지자 살짝 얼어서 미끄러운 노면으로 몸은 뒤뚱거렸다.
휴식을 위하여 작은 호수 옆의 긴 나무벤치 위에 배낭을 내리는 순간 나는 무방비상태로 넘어지고 말았다.
판자는 못이 박히지 않고 그냥 올려져 있어서 넘어지는 동시에 아픈 왼쪽 발목 부위를 반대방향으로 크게 접질렸다.
아차! 순간적으로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숨이 멎고 너무 아파 눈물이 찔끔 났다.
젖은 땅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다른 사람이 이런 착오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판자를 옆으로 세우고 비를 맞으며 긴 휴식 후에 천천히 걸었다.
이제는 통증이 통증으로 느껴지지 않고 추위가 추위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산은 점점 깊은 곳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나의 절망스러운 통증과는 다르게 숲 속의 자욱한 안개비는 무아지경을 느끼게 하면서도 점점 한기를 품은 비로 변하였다.
쉘터 이름이 스프링산이니 분명 산언저리에 쉘터가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계속되는 오름길이 차가운 비와 함께 힘겹게 올랐고 마을에서 모두 휴식을 하는 탓으로 어떤 하이커를 만날 수 없었다.
스프링산 쉘터이니 이름처럼 따사롭게 햇살 가득한 쉘터가 있을 것을 상상하며 걸었지만 쉘터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이제 비는 바람과 함께 하였다.
자욱한 안갯속에 언뜻 쉘터의 지붕 같은 물체가 보이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무거운 다리를 더 빨리 움직였다.
가까이 가니 양철지붕이 아니라 비스듬히 누운 큰 바위였다.
바위가 쉘터 같은 착시현상은 여러 번의 절망감을 주고 어제의 한여름 같은 햇살은 어디에도 없고 고요한 산속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소멸된 듯이 아무도 없었다.
이러다가 짙은 안개로 쉘터의 이정표마저 모르고 지나칠까 두렵다.
이런 걱정 중에 이정표 없이 바로 등산길 위에 쉘터가 있었다.
춥고 지친 몸으로 들어선 쉘터 안에는 이미 만원이었다.
침낭 속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하이커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부덜부덜 떨렸다.
일찍 도착한 하이커들이 갑작스러운 추위로 침낭 속에서 동면하듯 있었으며 그때 누워있던 한 중년의 목소리가 침낭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모하비, 아 유 오케이?” 무스탱이었다.
무스탱 덕분으로 모두 조금씩 자리를 양보해 주어서 나는 염치없이 쉘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얼른 침낭 속에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비옷과 젖은 옷을 쉘터 벽면에 걸었다.
“물은 언덕 아래에 있어요.” 무스탱이 또 말했다.
“물이고 저녁이고 너무 추워서 다 포기할래요.”
추워서 쉘터 밖에는 아무도 없고 모두 침낭 속에 머리까지 넣고 누워 있다.
늦은 오후가 되자 기온은 급속도로 하강하여 뜨거운 수통을 껴안고 비상용으로 가진 핸즈 워머 2개를 보온양말과 장갑 속에 각각 1개씩 넣고 누웠다.
침낭 속에서 젖은 몸은 욱신거려서 몸살이 날까 봐 두려웠다.
침낭 속에서 고열량 허니 번 빵을 먹고 쉘터 밖으로 나가 음식물 쌕을 쇠줄에 매달고 주변을 돌아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늦게 도착한 하이커들의 텐트가 안갯속에 우산처럼 보였다.
쉘터에도 추워서 이야기도 없는 침묵의 동면상태로 고요하다.
양철지붕 위에만 사그락사그락 얼음비 내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오늘 밤에 영하로 내려가면서 새벽에 비가 눈으로 바뀔 거예요.”
무스탱이 얼굴을 내밀며 날씨를 말한다.
옆에 누웠던 어린 여자 낫옛이 침낭에 얼굴을 묻은 채 비명을 질렀다.
“안돼 추워진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밤새 비가 오고 영하로 내려간다는 날씨정보가 사실이어요.”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입니다.”
무스탱이 이렇게 말하자 나도 한마디 하였다.
“이 산은 스프링산이 아니라 윈터산이라 해야겠지요.”
모두가 동감이라며 웃었다.
노보 하이커들은 이 쉘터에 지나는 시기가 항상 춥고 비를 만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스프링산 쉘터에서는 누구나 추웠다는 기억을 하였다.
이곳이 제 아무리 추위도 시절을 이기지 못할 것이니 내일을 고대하며 숲의 한기와 처절하게 싸우는 밤이 되었다.
* AT 나무 위에 보이는 아름다운 옥색 이끼
* 얼음의 나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4-8 일 안개 맑음 31일째 누적 485.1 km ( 301.4 mi )
제리캐빈 Jerry Cabin 쉘터. 이동 25.6 km ( 15.9 mi )
제발 비가 그치길 잠결에도 소원했건만 동이 트기도 전에 화장실을 다녀온 무스탱이 숲이 얼음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밤새 추위로 견딘 하이커들은 몸이 부서질 듯하였지만 동이 트자 용감하게 일어났다.
보슬비가 나무를 적시고 밤새 기온은 내려가고 그 비는 시나브로 얼은 나무에 붙어 얼고 또 그 위에 비가 내려 얼고 이렇게 반복되면서 생명체와 무 생명체를 막론하고 투명한 얼음꽃을 만들었다.
새벽에 눈으로 변하면서 그 얼음 위에 내린 하얀 싸락눈이 꽃가루처럼 뿌려졌다.
자연은 하루 전의 봄 날씨를 순식간에 겨울 왕국으로 만들었다.
함박눈이 내려 온산을 뒤덮은 것과는 전혀 다른 얼음나라의 신비로움을 보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3월 초도 아닌 4월 초에 눈이 오다니! 추위의 고통을 겪은 자에게만이 아름다운 비경을 볼 수 있었다. 추위를 견디는 대가로 숲의 절경에 눈은 호강하였다.
나는 몸서리치게 추운 이 순간을 이기는 방법으로 서둘러 숲으로 행군할 준비를 하였다. 어젯밤 물공급을 생략하였기 때문에 아침을 해 먹지 못하고 프로틴 바로 차가운 속을 달려며 출발하였다.
등산로에 오르니 얼음나라의 그림은 더욱 다채롭고 그 아름다움은 섬세하고 빛에 투영되어 신비로웠다.
길을 밟으면 눈가루가 미끄럽지 않고 그 아래 얼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내 발에서 속삭인다.
마치 튀김옷을 잘 입혀 튀긴 오징어 튀김 한입 깨무는 그런 맛있는 소리가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눈과 얼음의 조화는 작년에 피고 진 마른 꽃 위에도 내려서 새로운 꽃이 피었다.
이제 막 올라온 봄꽃들은 가련하게도 얼어서 온몸을 웅크리고 햇살을 기다렸다.
작년에 나무에서 떨어지지 못한 노란 단풍잎도 역시 흰옷을 걸치고 뭐니 뭐니 해도 거대하게 쭉쭉 뻗는 나뭇가지에 붙은 얼음꽃이 가장 장관이다.
오름길 하나를 정복하니 이제 춥지 않아서 추위로 굳은 몸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였다.
내 몸은 거친 숨소리에 더운 입김을 연신 내뿜으며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를 품어내고 있었지만 숲은 여전히 얼음나라였다.
아침 햇살이 얼음꽃 위에 내릴 때 벌써 젊은 하이커가 나를 따라잡기 시작하였다.
그가 나를 지나며 저쪽을 좀 보라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아득한 먼산에는 새하얀 눈을 덮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얼음나라 여행이 되었다.
고도가 높은 곳은 흰색의 눈꽃으로 덮이고 산의 중간은 초록색으로 봄을 알리고 산아래 마을은 황금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열고 있다.
흰색은 색의 여왕이며 스스로도 고고하고 모든 색과 조화로운 동시에 화려하였다.
누가 흰색을 무채색으로 하였는가 수만 가지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이 흰색이다.
오후가 되자 기온이 점점 오르고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몸은 완전히 풀려서 걷기가 자유롭다.
나뭇가지의 얼음도 녹아서 바람이 살짝 불면서 그 나무를 스치면 우루루루... 우두두둑...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무 아래로 얼음비가 내린다. 온도가 오르고 키 큰 나무의 얼음이 살짝 녹고 이때 바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얼음비가 지상으로 쏟아지는 소리의 향연이다.
처음 듣는 소리이고 처음 보는 얼음비가 내린다. 하늘과 나무가 이야기하고 바람이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얼음꽃은 지상으로 내려오며 속삭이면 나는 자연의 색다른 소리를 가슴에 담고 그 신비의 비경을 마음에 담았다.
다시 오솔길이 끝없이 펼쳐지다가 때로는 이끼로 뒤덮인 돌길이 나오다가 이윽고 바윗 기를 만나 바위틈으로 비집고 오른다.
바위능선을 따라 고봉의 윗자락에 서자 시야가 확 트이고 하늘과 맞닿은 먼산에는 하얗게 채색된 병풍 그림을 연출했다.
햇살은 대형 그림의 조명이 되어 그 그림을 시시각각으로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바위로 덮인 길이 가파르게 방향을 바꾸고 계속 이어진 능선 바위는 양쪽이 모두 절벽이다. 먼산의 눈산은 여전히 한 장씩 펼쳐보는 테마 설국의 그림책이다.
계속 능선 바위를 걸어가자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 마침내 늦은 오후에 쉘터에 당도하니 많은 하이커들이 모닥불 앞에 앉아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캠프장 역시 주말 시장이 열린 듯 울긋불긋 텐트촌으로 인산인해이다.
나도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이 끝내고 음식물 쌕을 쇠줄에 올리려는데 나에게 이것이 큰 숙제이다.
모닥불을 쬐든 한 청년이 달려와 매달아 주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묻자 헥터라고 한다. 저녁이 되자 기온이 다시 내려가고 이제는 텐트생활에 길들여져 춥지만 포근한 느낌이다.
너무나 지쳐서 눈산에서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어젯밤 눈물 나게 추웠고 오늘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설경
* 눈의 나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4-9 월 맑음 짙은 안개 32일째 누적 510.0 km ( 316.9 mi )
하그 백리지 Hogback Ridge 쉘터. 이동 24.9 km ( 15.5 mi )
지난밤 빼곡한 나무 윗자락에서 바람이 일렁이는 소리는 왠지 내일의 날씨가 불길하다.
새벽으로 시간이 흐르며 바람은 점점 거친 숨소리로 나무둥치까지 내려와 키 큰 나무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얼음덩어리가 우두둑 텐트를 내리쳤다.
이것은 소나기보다 더 위협적이어서 텐트가 찢어지는 불안감으로 어젯밤 잠을 설치게 하였다.
바람은 밤새도록 나무를 흔들었고 지상으로 내려와 나무 전체를 뒤흔들어 얼음꽃을 땅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새벽이 되자 더 이상 떨어질 얼음이 없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더 떨어질 얼음꽃도 없어지자 바람은 잠들었고 나도 잠들었다.
이 고요함으로 깊게 잠이 들었을 때 다시 숲의 작은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그락 사그락...
숲에서의 밤은 소리에 민감하여지고 소리로 숲이 보인다.
밤에는 텐트 안과 텐트 밖은 천국과 지옥이다.
내 텐트 위에 무엇인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비는 분명 아니고 한밤에 새가 모이를, 작은 동물이, 다른 텐트 위에도 소리가 나고, 궁금하지만 텐트 문을 여는 순간 내 체온이 급 하강하기 때문에 참았다.
동물이 텐트를 짓밟고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냥 누워있는 것이 체온 유지에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 기분 나쁘지 않은 소리는 그러나 불안하여 잠들지 못하고 좁은 침낭 속에 뒤척이다가 용기를 내어 텐트 지퍼를 열었다.
함박눈이다.
신은 바람을 이용하여 나무에 달린 얼음꽃을 밤사이 지상으로 보내고 그 나뭇가지를 말끔히 청소한 후 눈꽃으로 숲을 바꾸어 놓았다.
참으로 신기한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찰나의 변신이다.
이곳이 천국인가! 신의 기교인가!
봄을 부르는 몸부림인가!
끔찍한 추위가 한계점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너무 추워서 눈꽃이 잔인한 아름다움이었다.
내일 눈 덮인 산길을 어찌 걸을까,
그리고 끔찍한 이 추위를 또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숙명처럼 이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속수무책의 추위에 나는 눈물이 났다.
저 세상의 하늘나라로 떠났던 그리운 부모님이 그리웠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보려고 눈이 되어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문명 세상에 있는 따뜻한 나의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나는 추워서 울었고 추워서 일어났고 추워서 걸었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이지만 천천히 걸어서 내 몸의 열로 체온을 올리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텐트를 걷는 내내 눈은 계속 내리고 여명의 푸른빛을 등불 삼아 출발하였다.
아무도 걷지 않았을 하얀 눈길을 걸으니 눈 덮인 등산로에 남자 발자국이 보였다.
이것을 의지하며 걸으니 입은 비옷 위에도 눈이 사각사각 내린다.
늠름한 등산화 발자국의 주인은 길에서 방수재킷을 꺼내 입고 있었다.
그를 지나서 또 2명의 발자국이 쌍을 이루며 보였다.
나 말고도 벌써 3 사람의 하이커가 걷기 시작한 것이다.
열심히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니 눈이 그치기 시작했고 숲은 흰 세상이고 대기 중의 공기도 흰색이다.
오후로 넘어가기 전에 첫 쉘터를 만나서 눈 위의 발자국 커플을 만나 함께 휴식하였다.
오늘도 15마일이 넘는 여정인데 연이어 추운 날씨에 아침을 잘 챙겨 먹지 못한 탓으로 변비가 생기고 자연 속의 화장실이 나에게는 여전히 불편하였다.
좁은 오솔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소방도로의 넓은 산길을 만나자 오후 햇살을 이고 마주 오는 부부는 섹션 하이커이고 연이어 두 남자 하이커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한 하이커가 나를 보자 그는 배낭을 내린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트레일-매직!”
그의 배낭 속에는 도넛과 바나나와 캔콜라가 있었다.
그가 주는 도넛은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먹었고 내가 바나나 껍질을 걱정할 때 그는 웃으며 비닐봉지를 주며 말했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작은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 옆에 주차된 빨간 스바루가 내차인데 그곳에 바나나 껍질과 가지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걸어두고 가세요.”
나는 그의 따스한 마음과 배려에 추위가 녹았다.
“저는 콜라는 못 마시니 다른 하이커에게 주세요.”
일일 등산을 하면서 트레일-매직을 하는 마이클의 배낭에는 하이커들에게 나누어 줄 간식거리가 가득하였다.
마이클은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의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새로운 산맥부터는 산이 깊어지고 가파른 오름길이 온통 진흙이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올라가라고 말했다.
마이클과 헤어지고 나는 바나나를 먹으며 천천히 걸어서 주차장에 도달하니 그의 빨간 자동차가 보였다.
다른 하이커들도 쓰레기를 남겼고 감사의 메모도 있었다.
새로운 산맥이 이어지면서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폭포가 산맥의 시작점에는 큰 개울을 이루고 흘렀다.
물을 정수하여 든든히 마시고 땀이 난 몸을 닦으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마이클 말대로 진흙길의 가파른 길이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산아래에서 보였던 폭포 위로 올랐다.
오늘 가는 길이 멀기도 하지만 가파른 경사면으로 몸이 금방 지쳐버렸다.
깊은 숲은 안개가 자욱하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길을 잃기 쉬웠고 기온이 점점 하강하여 걸어도 추웠다.
점점 깊은 숲으로 들어가니 내 마음도 불안하다.
산세가 무섭지 않은 편안함과 뒤통수가 쭈삣거리는 두려움의 묘한 감정이 동시에 느껴질 때 누군가 마주오든지 나를 지나가든지 하이커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오늘따라 안개 고요한 숲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안갯속에서 어슴푸레 보이는 한 남자 하이커가 맞은편에서 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다음 쉘터는 얼마나 남았는지요?”
“너무 춥고 힘든 날이지요.”
“여기서 3마일 정도 더 가야 해요.”
그는 내가 도착할 쉘터에서 휴식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한참 가야 쉘터를 만나는데 안개가 점점 짙어져 서둘어야겠어요.”
그도 남쪽 방면의 쉘터를 나도 북쪽 방면의 쉘터를 만나려면 서둘어야 할 늦은 오후이다. 몸이 지친 상태로 쉘터까지 4.8 km ( 3 mi )를 걷는 것은 최악의 거리이다.
계속 걸어야 하는 중압감으로 늦은 오후의 3마일 오름길은 이미 고갈된 체력으로는 엉금엉금 기어가게 된다.
갑자기 안갯속에 작은 오소리 같은 물체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비상사태이다.
순간의 두려움에 그 녀석이 내 시야에 들어오니 개가 아닌가!
심 년감 수했다.
그리고 한 여인이 고삐를 풀어서 미안하다며 뒤 따라온다.
길에 남자 배낭이 있는 걸 봐서 그는 화장실, 그녀는 스낵타임, 작은 개는 나를 반기러 온 것이다.
그녀를 지나 다시 걷기 시작하고 새가슴이 되어 놀랐지만 그녀의 일행이 뒤에 있으니 두려움은 사라졌다.
쉘터는 깊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등산로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쉘터가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쉘터 주변의 기온이 점점 쌀쌀해지고 물을 찾아 다시 지그재그로 산자락을 내려갔다.
이 쉘터의 물공 급지가 멀리 있어 물이 있는 곳은 한적하고 공기는 신선 하다 못해 몸이 얼 것 같았다.
계곡물은 추위를 비웃 듯이 씩씩하게 흐르고 계곡물과 바람은 온몸을 오그라들게 하였다.
물을 가득 채운 무거운 물병을 들고 돌아오니 여러 하이커들이 도착하여 삼삼오오 텐트를 치느라 분주하다.
쉘터에 들어오니 헥터가 도착하였다.
그도 오늘이 힘든 날이라며 무릎이 아프다고 잠자리에 누웠다.
칠흑 같은 어둠에 모두 잠자리에 들자 이 어둠을 두드리는 사람은 무스탱이었다.
“지금까지 걸었단 말이어요?”
“이 산은 해가 지기도 전에 여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울고 있어요.”
“어두워지자 짙은 안개로 길을 잃을까 두려웠고 추워서 혼났어요.”
그가 쉘터에 잘 수 있도록 저마다 자리를 좁혔다.
그는 오늘 아침에 눈이 멈출 때까지 쉘터에서 기다렸는데 눈이 멈추지 않아서 늦게 출발했다고 한다.
그는 저녁을 생략하고 잠자리에 들자 다시 여우가 바로 피크닉 테이블까지 와서 울부짖으며 활보하고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숲은 두려움인을 느끼게 하고 변화무상한 자연에 순응하면서 하이커들도 산사람이 되어갔다.
* 혹독함 뒤에 볼 수 있는 황홀경
* 맑은 날의 진흙길 -테네시 주
4-10 화 맑음 33일째 누적 536.3 km ( 327.0 mi )
볼드산 Bald Mountain 쉘터. 이동 16.3 km ( 10.1 mi )
며칠 동안 눈과 비의 궂은 날씨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맑은 날씨로 기분이 좋았다.
꾸준히 걸어야 추위를 이길 수 있으며 이제는 추위를 이기는 면역력도 생겼다.
연 3일을 무리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변비가 심해졌다.
특별히 먹을 음식도 없고 음식이라고는 에너지바와 견과류를 매일 먹었으니 영양을 고르게 섭취하기 못하여 피곤이 빨리 찾아왔다.
발목도 약을 챙겨 먹고 자기 전에 마사지를 해 주었지만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사하니 발목 통증은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마시지 할 때는 발목과 이야기를 한다.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다오...’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나아주기 바란다. 집으로 돌아가면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걷지 않을 테니 이겨 내길 바란다...’
발목을 마사지하는 동안 혼자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3일 연속 궂은 날씨로 입은 옷과 텐트를 말리지 못하여 배낭이 더 무겁다.
등산화는 진흙탕길을 걸어서 물을 흡수한 신발이 무겁다.
눈과 비가 그친 지 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젖은 산길은 평탄하지 못하였다.
젖은 길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진흙길이 되어 하이커들을 더 힘들게 하였으며 누구나 바지와 신발은 진흙으로 엉망이다.
나는 각반을 착용하여 바지는 깨끗하지만 각반과 등산화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일반 하이커들이 착용하는 각반은 발목만 덮이는 얇은 천으로 모래나 뾰족한 소나무 잎이 신발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이지만 내가 착용한 긴 각반은 방수가 되어 무릎 아래 바지가 깨끗하다.
무릎까지 오는 각반은 열이 많은 미국인 하이커들은 선호하지 않지만 나는 추위에 약하여 쌀쌀한 아침에는 각반이 보온 역할을 해 주었고 진흙길이나 물웅덩이를 만나서 젖거나 더러워져도 방수가 되었고 쉽게 씻어 말릴 수 있었다.
또 여름에는 모기로부터 보호되고 뱀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오늘은 16 km 만 걸어서 일찍 쉘터에 머물면서 냄새나고 축축한 텐트와 옷가지를 나뭇가지에 걸어서 말리며 햇살을 쬐이며 숲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 너무 추워서 가슴이 아팠던 날
* 지난여름에 피고 진 산당귀에도 눈꽃이 열리고
* 그래도 봄은 오시니 발걸음을 재촉하고
* 발목 통증으로 지칠 대로 지쳐 걸어지지 않았던 모하비
* 모하비 블로그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하비의 글과 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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