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Nable Person

모하비는 다도의 정석으로

마시는 다도 세트는 없지만 작은

잔으로 마시면 온몸으로 전해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은 또다른 명상과

같은 마음 수양이자 기운을 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도의 경지에 달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느낌으로 다도를 하려면 가장 기본이

작은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다도 세트에

아침 햇살이 들어 옵니다.

 

다도 세트 옆으로 향초를 꼽는

도구와 그 옆으로 다도기를 씻으면

헹굼 물이 맑고 깨끗하여 튼 도자기에 부어

두면 자동으로 방의 건조함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부엌 방의 다도실에서 차를 우리며

아침이 시작됩니다.

~~~

모하비는 한국에 살 때 제법 큰 집의

전원주택에 살았는데 화장실 3, 방 5개의

이층 집에서 청소도 요일별로 나누어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골의 전원주택 동네에서

모하비는 뜨개질 강사였고

두루 다양한 재주를 가진 외국에 살다가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미술을 전공하고 남편 따라 러시아에서 주재원으로

있다고 자연사랑으로 전원주택으로

오면서 그녀의 늦둥이 아들이 모하비의 두 딸인

보석, 상전님의 친구였습니다.

그녀의 작은 아들과 13살이나 많은 큰 아들은

러시아에서 작곡을 전공하여

보석, 상전님의 개인 피아노 교사였습니다.

 

고풍스러운 장식장에 넣어 둔 그릇은

 파티용으로 많은 손님을 위한 그릇이고

모시 커튼은 겨울인데도 단아함으로 빳빳하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습니다.

~~~

그녀는 무명 예술인을 많이 알았고

모하비도 자연 그 소통의 장에 가끔 참여

하면서 무명 예술인이 연극과 다양한 포퍼먼스의

서울에서도 늦게 귀가하게 되고

지방 공연에도 차량이 필요했습니다.

모하비는 당시에 자동차가 있었고 대부분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녔습니다.

다음날 일이 없으면

무명 예술인의 공연이 끝나면 대중교통이

끊어진 새벽에 일일이 집으로 태워 주는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지방으로 가기도 합니다.

후원자들이 숙식을 제공하지만 악기를 가진

예술인은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어

모하비의 차량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뒤뜰의 담장을 타고 올랐던 덩굴은

지난여름의 찬란한 초록의 모습을 잃고

지금은 앙상한 덩굴이 거미줄처럼 잇고 있습니다.

정갈한 그릇 하나하나가 모하비를

감동하게 합니다.

 

이 집을 감독님에게 소개한 옆 집에 사시는

여자 스님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사실까?

오전에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모하비 고향은 들판이 많아

시골 동네이지만 더 도시스러운데

산촌 마을의 간전면은 이런 돌담 집이 대부분이라

걸어도 정겹습니다.

응달의 눈이 녹지 않아 모하비의

발자국을 남겨 봅니다.

 

스님 집으로 마실 구경삼아

타박타박 눈길을 걸어갑니다.

~~~ 다시

 30년도 넘은 그 시절에 이야기로

모하비는 스텝으로 되어 공연은 꽁으로 보고

지방으로 여행하며 운전사로 후원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들이 진정한 예술인을 세상에서 빛나기를

기도했습니다.

마당을 끼고 쪽문을 끼고 걷는 오솔길을

걸으면 어느덧 그녀의 작은 대문입구를

만납니다.

뜨개질 꽃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장의 손재주는 경지에 오른 분 같습니다.

집은 느티산방이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여

외국인이 자주 방문한다고 합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앞마당으로

통하는 데크에 고양이가 점령하고

한국의 겨울 추위에 집 안에는 바질을 

비롯한 화분이 혼자 사시는 여스님의 보디가드처럼

촘촘히 창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인하는 공간의 

뒷 벽이 모두 다도기가 입이 벌어집니다.

~~~

아아 어느 날 한때 예술인으로 활약하였던

다양한 예술인의 모임에 모하비도 초대되었습니다.

연말의 선물 하나씩 가지고

1박 2일 놀았습니다.

예술인의 대부분은 노는데도 끈기와

인내가 있는 밤을 새워 잘 놉니다.

밤새 차를 마시고 담소하고

판소리, 악기연주 저마다의 자세 공연이

열였습니다.

예술인들은 이렇게 고상하게 밤새워 노는 줄

모하비는 처음 봤습니다.

모하비는 그 무대에서 모하비의 자작시를

낭송했는데 아마추어의 칭찬과 특히 양양에 사시는

EBS TV 문학관 작가 님과 문이 맞았습니다.

그녀는 글을 계속 쓰라고 모하비를 응원하며 언제라도

양양으로 글감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문인과 TV문학관 작가와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부부 등 지금도 그 이름을 나열하면

세간이 알려진 예술인들입니다.

 

한겨울인데 허브에 꽃이 피었습니다.

 

응접실에서 바라본 한 층고

아래의 부엌이 크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아서 요리에도 일가견 있으신 스님이라

직감됩니다.

지붕의 석가래가 보이도록 뚫어서 

다락같은 시렁에 옹기종기 줄을 지어

뚜껑 달린 소쿠리가 보는 순간

고향의 푸근함을 절로

느끼게 합니다.

 

이 그림은 스님의 작품입니다.

마음 수양에 최고의 친구라는데 이 그림

기법은 돌가루에 물감이 합하여 만든 것을

천에 그린 그림인데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었으면

방바다 이런 그림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금세 맛있는 유자향의 차와

곶감을 앞 접시에 내놓았습니다.

곶감의 첫 입으로 베 먹는데 힘들까 봐

칼집을 낸 것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배려심이

깊은 분으로 느껴집니다.

 

집안에 법당을 만들어 

스스로 단련하려는 것과 또한

절문화에 외국인이 매료된 분이 이곳

에어비앤비에 오면 좋아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식이며 모든 것이 스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웃집 고양이까지 놀러 온다고 하십니다.

~~~

그 예술인의 모임은 12월 송년회로

정해져 각자의 선물을 하나씩 준비했는데

모하비의 선물이 공교롭게 황 감독님이 집었습니다.

한 해의 결심을 담은 말린 대추

그 한 입 한 입으로 올겨울을 이기라는

메모와 함께

그것의 인연으로 모하비도 여느

지인과 함께 황 감독님이 당시에 일을 하여

기거하시는 서울 집을 예술인들과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부엌이 반 층 내리는 곳의

디딤돌 같은 나무 디딤 나무의 밟는데

촉감이 좋습니다.

사람은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에어비앤비 방을 보여 준다기에

뒷마당 툇마루로 들어서자

거대한 검둥이 개도 있습니다.

몸집이 거구답게 아무 말이 없습니다.

 

2인 1실 입실하면 온하한 어머니의

배안에 들어가는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림도 장식도 손수 그리고

뜨개질한 것입니다.

 

에어비앤비 거실에서 바라본

앞뜰로 마당과 장독대라 보입니다.

이것만 보고 있어도 외국인에게는 저절로

힐링하고 갈 것입니다.

 

정갈한 부엌과 화장실

 

좌식의 응접실 방석도

수를 손수 놓고 만들었다니 그 손재주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분입니다.

 

자신의 그림으로 손님방을 꾸몄고

메모꽂이를 보니 손 바느질도 대단합니다.

 

에어컨의 굵은 줄도 뜨게로

마감되어 하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

그렇게 황 감독님의 서울 집에서

다도를 배우고 감독님의 다도를 위해

다양한 중국 여행과 한국의 다도 근원을

찾는 다큐를 촬영했습니다.

 

커튼도 그림 한지입니다.

그림 옆으로 보이는 붓꽂이의 붓을

보니 그녀가 그림 그릴 때 집중하는 모습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구례군 간전면 수졸당의

느티산방은 한옥의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곳으로 봄, 여름, 가을에는 최고의

자연도 느낄 것입니다.

1박이 30 만원 내외로 엘에이의 모하비의

안내로 왔다면 아마 더 깊은 애정과 좋은 가격대로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담소 중에서 어느 절간의

주지스님이 연락 옵니다.

어디야? 빨리 절간을 좀 지켜 줘야

출타하시려는 주지스님의 간접적인 압박의

전화입니다.

시골 인심 많은 아낙네처럼 보이는 여스님의

마음과 손길을 이 찻잔처럼 섬세하고

예리하시고 인정이 많습니다.

그것에 자기 수양으로 도의 경지를 가진 

금상첨화라는 것을 추가 한 분입니다.

 

큰 대문입니다.

~~~~

그렇게 모하비는 어느 겨울이 시작되는 날

홀연히 미국 엘에이로 도미하였습니다.

모든 지인도 절친했던 동창도 당황했고

심지어 부모 형제는 얼떨결에 긍정의 답으로

모하비에게 허락했습니다.

모하비도 타국살이 직전의 긴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칠흑같이 어두운 한 밤에 걷는데

한 발아래에는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어떻게 발을 옮기는 데 따라 삼 모녀의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모하비의 삶은 포기하고도 두 아이의

앞길에 초긴장을 했으며

모하비가 떠나기 전에 예술인들은

진수성찬의 식당에서 송별회를 해 주었는데

유일하게 황 감독님은 도미하는 이유도

앞으로의 걱정도 그리고 덕담조차

안 했습니다.

모두 고생길이네, 못 가네, 인생망치네, 애인생까지,

이런 말에 황 감독님은 침묵으로

모하비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황 감독님과 모하비의 만남으로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번 방문으로 지인들의 소식도 듣고

또한 새로운 귀한 분을 만나는 인연도 가졌습니다.

모하비의 도미 당시 글을 쓰기 시작한

미국 이야기 15편의 글을 모하비의 모험에도

올렸습니다.

이 글은 2005년 도미한 해 부터 6개월 동안

미국 알기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메일로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글은 포스팅 주소로 열수 있으며 총 15편까지

9 ~ 23번까지 있습니다.

https://hees1113.tistory.com/9

 

마당에서 이런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매일 사시는 스님은

큰 산을 품은 자연 수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 스님은 황 감독님에게 이 마을을

소개하여 별장처럼 사용하면서 지금은 이웃사촌이

되었습니다.

백운산 자락이 건전면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땅만 파면 돌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돌로 담벼락을 만들어

오늘날은 도시 사람 들고 태평양을 너머

세상 사람들도 좋아하는 돌담 마을이 되었나

싶습니다.

 

건전면의 홍대 마을 회관에도

운동기구가 안 마당에도 있습니다.

옥상의 위의 지붕을 증축하여 농산물

건조실도 하고

여름에는 휴식처로 식구들이 모이면

파티도 하도록 나라에서 지원금을 지어서

짖도록 했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보온이 되고 여름에는

강한 햇살을 피해 집이 시원할

좋은 아이디어도 선진국인 된 한국인의

아이디어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 차를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오후에는 황 감독님의 제2의

자연인의 집으로 꾸며진 별장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그곳은 오전에 머물렀던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섬짐강의 큰 다리를 건너면

경상남도입니다.

악양면은 경상남도에 소재하며

문학 작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지로 유명한 곳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곳으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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