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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신혼시절을 보내고

딸 둘, 아들 둘 낳아 행복하게 살았던

부모님은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시고 고아가 된 큰 오빠와 모하비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언니와 형부가 맛있는 음식

준비로 분주하였으며

우리 남매를 온종일 기다렸습니다.

월요일 아침 자동차 길은 순조롭고

모하비가 서울 살면서 대구 내려가는 길은

오직 경부선을 이용하여 강남의

밀리는 곳을 뚫고 나가기 힘든 교통체증을

느꼈는데 지금은 다양한 도로가

뚫려 모하비는 한국의 도로망에 어리둥절합니다.

 

흠이라면 좀 더 잘 사는 한국이 되어서

통행료가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특히 서부의 고속도로는 95%는 무료로

달릴 수 있으서 기름값만

부담하면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동부에 살았던 시절의 겨울 풍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국의

고속도로입니다.

 

모하비가 좋아하는 속리산도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보입니다.

한국의 산도 이름이 있는 산만 4,400개가

된다고 하니 산의 나라입니다.

 

달리는 곳곳마다 오빠가 올랐던

산자락에 눈에 선 하듯이 이야기합니다.

마치 모하비가 미국 서부의 

대부분의 산맥을 걸었듯이 모하비

오빠도 한국의 산천을 대부분 올랐으니

지금도 올라간 산자락만 봐도 그리운가 봅니다.

 

이윽고 경상북도에 당도하니

곧 모하비의 정든 고향집이 다 온

모양입니다.

한국의 편리한 운전 시스템에 자긍심이

느껴지고 운전자의 편의를 잘

살피는 도로의 편의 시설 중에 졸음 쉼터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도로가 바뀔 때마다 색깔 선을 그어

그 색깔로 따라 운전하니 운전 중 속도감으로

헷갈리는 것을 보완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시민이 공무원이 내고 그에 대한

포상까지 한다니 참신한 아이디어입니다.

많은 무인 카메라는 과속의 충동을

제어해 주는데 좋은 방침입니다.

 

휴게소에서 주문도 스스로 하니

누구와 대화 없는 주문제입니다.

오빠는 가락국수를 모하비는

고등어조림을 시켰습니다.

미국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락국수를 상상했는데

오빠가 한 젓가락 준 가락국수면발은

명석한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 쫄깃쫄깃했습니다.

 

휴게소의 커피 판매는

모두 로봇이 주문을 받고 있는데

왠지 사람이 파는 곳보다는 손님이 없어

설렁한 분위기입니다.

돌아올 때도 보았지만 사 먹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인원 축소를 위해 휴게소 식당에도

모두 컴퓨터 기구를 도입하고

주문과 결제를 스스로 하고 이 주문이

바로 주방으로 연결되어 음식이 나와서

어떤 면에서는 비대면 주문제라 편리하였습니다.

 

한국에 오면 가장 불편한 것이

쓰레기 문제이지만 분리수거를 완벽히

하는 나라로서는 단연 한국이

최상위권이라 자부하고 싶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개인 쓰레기를 공공장소에 투입하는

양심을 파는 사람이 생겨 

쓰레기 통에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니

웃지 못할 일입니다.

 

고속도로에도 사고 예방을 위해

많은 시설물이 있어서

운전자는 수시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어 마치 운전자를 아동을 다루 듯 가르치는

느낌이 들어 안전운전에 이바지하는

국가의 노력이 보여 모하비는 흐뭇했습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여기저기 생기니

한국은 산간지역이 많아

터널을 많이 지났습니다.

큰 사고가 터널에서 만큼을 피해야 하니

터널을 통과할 때는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모하비 고향은 경산시인데

서울에서는 복잡한 강남을 지나고

경산시 전의 대도시 대구를 지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지금은

외곽지에 뚫린 고속도로가 많아서 복잡한

도심을 우회하니 금방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모하비는 내년 2026년에 국토순례

자전거 타기를 시도하려고

장비와 자전거 공부를 많이 했는데

이번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예상외로 길어져

내년 방문은 아직 미지수로

자전거 여행도 잠정 미루게 되었고

미국인 산친구는 벌써 2026년 4월에 항공권을

끊었다니 혼자 자전거 한국 기행을

해야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국의 4대 강인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중에서 단연 가장 긴

낙동강은 모하비도 좋아하는 강 중의

하나이며 자전거 길에서 가장

길게 강을 끼고 달리는 코스였는데

고속도로에서도 얼핏 자전거 길이 보였습니다.

 

터널 내부 공사 중으로 

한 차선을 막아 두었지만 모두

안전 수칙을 잘 준수하여

순조롭게 잘 달립니다.

 

모하비 고향의 대표 산인

팔공산입니다.

모하비 오빠는 단기간 많은 산행으로

산행을 중단하여 산행 도구 대부분은 모하비에게

주었는데 이걸 다 싸 들고 미국 들어갈

가방이 될지 의문입니다.

 

모하비 고향집은 새로 생긴 고속도로로

살짝 지나서 다시 국도를

빠지는데 모두 포도밭 비닐하우스입니다.

세계인을 많이 만나 보았지만

 과일을 가장 즐겨 먹는 나라도 한국이라고

생각됩니다.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도

이제는 정겹게 느껴집니다.

 

오빠는 일부러 더 돌아서 모하비의

모교를 보여 주었는데 운동장으로

들어가겠다는데 기다리는 형부, 언니를 생각하여

모하비가 거절하자 사진을 찍으라고

오빠가 잠시 정차해 주어

지나는 길에 찍었습니다.

 

올 겨울 내내 찬기온과 맞서

살아날 마늘 밭입니다.

 

모하비 유년 시절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언니 체력도 이제 힘에 부치는지

여기저기 산만하다고 난리지만 모하비는

산만하여 더 정감이 느껴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사골국을 만들려고

형부는 매운 연기를 참으며

온종일 불을 때고

사골이 완성되었습니다.

빈 집으로 남아 있을 텐데

그나마 은퇴 후 형부는 이곳에서

겨울을 제외하고 기거하시니 온화함을

유지하게 되어 늘 감사드립니다.

 

형부는 농협조합장으로 은퇴하여

농사일을 좋아하시고

모하비 보다 13살이나 연상이니

지금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농사일이

힘이 들지만 자연 운동이 되어

더 건강해졌다고 하셨습니다.

모하비와 함께 땅을 좋아하시어 미국에서

모아둔 씨앗을 형부에게 드렸습니다.

 

언니는 부모님 집과 본 집인 대구를

오가며 두 집 살림살이에

이제는 힘에 부쳐서 올해부터 김장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시집간 둘째 딸이 얼마나 효녀인지

굴김치를 보내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언니의 둘째 딸로 태어난 모하비 질녀는

당시에는 아들이기 바랐던 서운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딸이 언니를 힘나게 하는 자식 중의 하나입니다.

결혼하여 분가하여 살지만 하루에 한 번

퇴근 후에 엄마인 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큰 딸은 장녀이자 모하비 아버지의 첫 손주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언니의 늦둥이 아들은

아파서 늘 마음조리며 막내 사랑을 퍼부었습니다.

 스스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

준 조카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LG의 중견으로 자리매김하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 주니 효녀인데

엄마의 건강도 외모도 책임져 줍니다.

지금은 언니의 조력자 입니다.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을 한다는

옛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천엽이 삶아졌는데 모하비는

완성품을 먹었는데 이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

보기 징그러운 것들은 모하비는 잘 안 먹는데

예를 들면 뭐,,, 닭발, 선짓국, 순댓국, 내장 등은

모하비에게는 아직 먹기 어렵습니다.

언니를 위해 용기를

내어 모두 썰었습니다.

 

11월의 따사로움으로 아직

꽃이 피어 있습니다.

고향집에 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납니다.

근검절약의 기본을 지키며 사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꽃나무를 자주 사

오셨습니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DNA를

모하비가 닮았나 봅니다.

 

민트가 사방을 덮고

싱싱하게 자랐는데 차 한번

못 마시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오빠가 잠자리 불편하여 3일 만에

집에 간다기에 2일을 미루는

조건으로 모하비가 같이 상경하고

모하비는 따로 다시 올 일정입니다.

 

시골 오면 먹을 수 있는

모하비 최애 메뉴 시래기 나물입니다.

형부가 한 솥 삶아 주어 매일 나물로 먹고

서울 와서 시래기 된장국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보물창고 광을 열면 평화로움이

느껴집니다.

아버지 성 김 씨의 이니셜이

박스마다 K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포도 농장할 때는 특별 주문제작 종이

박스를 사용하였습니다.

 

모하비가 좋아하는 자연 숙성

저장고 항아리는 어머니의

가장 아끼는 재산입니다.

큰 항아리에 된장을 식구보다 3배를

만들어 불쌍한 사람이 구걸 오면 된장을

퍼 주셨는데 상하지 않고 적어도 가장 긴 시간

먹거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어머니 만의 철학입니다.

지금은 언니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독대가 보이고 가족끼리 먹을

포도는 보온 비닐을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하비 고향집 뒤뜰입니다.

먹고 싶은 야채를 말만 하면 아버지는

그 씨앗을 심고 장독대 뒤에는 아버지의

새 품종을 심어 실험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거봉포도, 키위 등을 심어서

자식들로부터 모니터링도 받았습니다.

 

포도밭이 대추밭으로 바뀐 지도

어언 40년이 되어가니 

대추나무도 고목입니다.

 

지금은 형부의 놀이터인데

연세가 드시니 형부 혼자는 부대끼는

놀이터입니다.

 

두 그루의 단감나무가

주렁주렁 요즘은 남은 감은

까치밥인데 하나가 아니니 까치도

한국이 선진국이 된 덕을 톡톡히 봐서

먹거리가 풍성합니다.

 

대문 앞의 친척 밭은 연밭이라

연뿌리 반찬은 끊이지 않고 먹었는데

이제 묘목밭이 되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칼 가는 

형부 모습에 추운데 모하비가

다이소에서 언니 스스로 가는 칼갈이를

사다 드렸습니다.

 

맛있는 도가니 탕도 

완성되어 썰었습니다.

 

모하비와 언니가 엄마방에 자고

아빠방에 형부 그리고 작은 방은 거의

저온실로 사용하여 큰 오빠가 거실에 자는데

잠자리 바뀌었다고 새벽에

모하비와 기상하는데 농부부부는

피곤하셨는지 쿨쿨 주무십니다.

반가운 형제를 만나도 연식이 오래되면

고단합니다.

 

나들이 준비 하는데 형부와 함께 있으면

모하비는 연예인이 됩니다.

파파라치처럼 자동으로 모하비는 

사진 찍힙니다.

나들이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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