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ctor of The Century

세기의 영화 배우는 한국에도 있습니다.

젊은 브레드 피트 빰치는 훈남을 풍기는 그 매력의

마스크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신성일 배우는 모하비의 고향과 30분도 안되는

거리의 영천이 그의 말년에 보낸 곳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산 언저리 부분에는 모하비의

조상대대로 묻혀 있는 선산이 있어서

모하비를 지극히 사랑해 주신

조부모님도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모하비의 어린 시절 추석에 성묘하기 위해

힘들게 산길을

걸었는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모하비는 최초의 산행이 바로

조부모님 성묘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젊음과 나이가 들고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성일가와 성일관을 둘러보고

시간이 되면 그가 걸었을 둘레길, 산길도

걸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화려했던 배우 시절의 사진이

안뜰에 진열되어 있어서 찾는 이를 

반겨 줍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햇살을

등지고 언니와 함께 그 옛날의 영화 속으로 

빠져 듭니다.

 

안마당에는 모과나무가 흐드러지게

열려서 주인없는 공허함을

달래 주는 듯 합니다.

 

 노후에 그는 이곳 고향에서

말그대로 폴 날아가는 기와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집이 앞에는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있고 집 옆으로 낮은 산들이 포망하고

있으니 풍수학적으로 배산임수을

가진 명당의  영천 산골짜기 입니다.

 

지금은 영천시가 되었지만

모하비가 어린 시절에 영천의 외곽지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이 산중에 한국의 대표하는

배우가 탄생했습니다.

1957년 3,675:1의 경쟁률을 이기고

신필름에 케스팅 되었습니다.

 

집의 내부는 비공개되었습니다.

본명 강신영 1937년 5월 8일 ~2018년 11월 4일

늦게 발견한 폐암으로 안타깝게

사망하였습니다.

 

534편의 영화를 찍었고 그 중의

527편은 주인공 역이었습니다.

영화감독으로 4편을 찍었고

영화제작으로 6편이 있습니다.

 

16대 국회의원 출마로 그의

본영 강신영을 강 신성일로

개명했습니다.

 

신성일 배우는 없고 그의 앞뜰에는

성일가 표석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내 엄앵란 배우는 노후에는

이곳에 함께 살지 않아

졸혼이라는 말도 세상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스캔들과 그가 노년이 되어서도

여인들이 이곳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방문자가 시나브로 보입니다.

2007년에 성일가를 건축하였고

2018년 11년을 살다가

집과 대지 포함 천 여평의 재산을 고인의

유언으로 가족들이 영천시에

기부 하였습니다.

 

영천시는 성일가로 들어오는

길을 성일로로

정했습니다.

 

모하비가 찾은 날에는

성일관이 개관한 지 21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앙의 사진 총 8,512장을

이용하여 퍼즐을 만들어

맨 오른쪽의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60년대 처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던 신성일의 결혼식은

화재였습니다.

 

결혼식 당시의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뭇 여성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

엄앵란이 쓴 신부의 왕관과 결혼식때

입었던 신랑 신부의 옷도 전시되어 있으며

드레스는 앙드레 김이 디자인했습니다.

 

가족과의 반나절 여행을

잘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영상 속으로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 옵니다.

 

모하비 대문 오른쪽으로도

작은 텃밭이 있고

형부 님이 일구어 둔 배추와

파밭이 겨울을 이기고 있고 국화꽃 송이는

소담스럽습니다.

 

아버지는 결혼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이 집과

밭 그리고 논을 선물받아

4남매를 이 집에서 키우셨습니다.

모하비도 고등학교까지 이 집이 보금자리

였습니다.

 

형부 님 덕분에 처음으로

모하비 3남매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평생 추억할 사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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