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s War Museum

29일부터 조카는 학교방학이 되지 않았고

그녀의 딸의 유치원은 방학이라

모하비와 오라버니는 손주의

베이비시터가 되었습니다.

겨울의 온종일 실내 생활을 박차고

 그림을 좋아하는 손주를 위해

미술박물관을 가자는 모하비가

제안했습니다.

 

사하라

님은 어린이박물관이 좋다며

검색한 결과가

  어린이 전쟁박물관입니다.

본인의 관심분야 갔습니다.

 

용산의 거리를 지나는데

큰 과일가게가 길 밖에서 과일이

전시되어 바빠 보입니다.

 

한강도 건넙니다.

 

전쟁 박물관

 

 

전쟁박물관 입구에는 한국전쟁에서

참여한 나라들의 국기와 그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70 초반과 7살 손주는

처음으로 외출해 보는 체험이

되었습니다.

오빠 혼자는 결코 시도하지 못하는

손주와의 외출을 모하비가 주선했습니다.

 

이 전쟁박물관 바로 정면에는

국방부가 있어서

정면 사진은 피해서 찍었습니다.

 

유엔을 비롯하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우리를 응원하며 군대를 보내어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전쟁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에 전시된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탱크, 잠수함, 군용기가 많이 전시되어

야외에서도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7살짜리 손녀가 보기에는 어렵고

모하비와 사하라님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빠는 이 반잠수정의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박진감 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것이 배에서도 날아갈 때는

귀가 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손녀딸이 선 이 함포기로 군함에 설치되어

쏘아대는 소리에 오빠는 왼쪽 귀가

 현재 0%에 가까운 청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른쪽 귀는 40%의 청력으로

불편합니다.

 

모두 전시에 사용되었던

것이 설치되어서 순간순간의

긴박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은 모하비와

사하라님이고 손주 시은공주는 야외로 나와

추위도 모르고 즐거워합니다.

 

어린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겨울 독감과 팬데믹을 고려하여

아직도 그룹별로 움직여서

기다렸습니다.

 

전쟁당시의 사용되었던

일상용품이 전시되어 있고

바코드를 가까이 대면 자세한 설명이

화면에 뜹니다.

강감찬 장군 방에서 공부한 후에

3단계 퀴즈를 풀어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시은공주는 집에 와서도 퇴근한

엄마에게 자랑했습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찍어 달라고

합니다.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서

하루의 대부분이 그림 그리고 가위질하는데

시간을 보내니 베이비시터하기에는

좋습니다.

 

훈장도 그려보는 자리에서

그림에 진심인 시은공주 의자와

착 달라붙어 이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림 한 장만 쓰라는데

한 장 더 가지고 집에서 그리는 조건으로

겨우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물함에 둔 재킷을 가지러 가는

순간 애착하는 오리인형을 잃어버리고

다시 역방향으로 찾아 나서는

좌충우돌도 있었지만 해피앤딩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매년 한 번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 박물관 옆으로

어른을 위한 전쟁기념관도 있지만

해가 짧고 베이비시터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집으로 향합니다.

 

입구의 동상을 보면서 더 이상

전쟁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유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한국전쟁에 희생된 군인과

그 군인의 어머니들에 대한 조의와

슬픔을 생각해 봅니다.

 

무사히 돌아온 아버지

그 아버지를 포옹 하는 아들

이것을 세상 전부를 가진 기쁨일 것입니다.

 

그 돔 속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림 종이가 구겨진다고 손이 시린데도

저렇게 잡고 주차장까지 갑니다.

7살이 순간적으로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모하비도 설득할 방도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그 순간에서 한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리고 우리의

부모님들은 잘 견디어 냈습니다.

 

여의교를 지나면서 63 빌딩이

보입니다.

 

새로운 빌딩도 참 많이도

생겼습니다.

 

여의도에서 대방지하도를 지나면

왼쪽으로 공군호텔이 아직도 남아 있을 뿐

 공군본부가 대전으로 이동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더 남으로 달리면 해군본부는 여전히

있으며 이 여의대방로를 달리면

보이는데 이 도로를 반경으로 사하라님은

해군본부에 근무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와의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초등학교 들어가 학생이

된다는 기대감이 대단한데 조카 내외가 맞벌이로

외할머니 도움없이 학교 다닐 것을

생각하니 애처롭기만 합니다.

조카가 엄마 돌아가신 후로는

2시간을 더 일찍 일어난다는데 잘 견디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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